랜덤고찰2014. 2. 24. 21:48

아는 분과 저녁식사를 했다. 성에 대해 매우 자유로우시고 게이라서 다른 한국사람과는 나누기 힘든 흥미로운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 도중 내가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화목하게 사는게 의미있는 삶 아니겠나." 그분은 뭐가 옳고 그르고라고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21세기의 정보화시대에서 가족이란 단위가 시대착오적이라며, 언젠가는 가족이 아예 없어지지 않을까라는 예측을 했다. 처음에는 무슨소린가 했는데, 들어보니 또 일리가 있는 말이였다.


그분인 일단 자신 주변에 결혼한 사람들 중에서 혼외관계를 가지지 않은 사람을 한명도 못봤다고 말했다. 모두가 자기살기에 바쁜 정보화시대, 단체가 아니라 개인을 대상으로 컨텐츠가 제공되는 정보화시대에서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무척 적다는 말이였다. 10년전까지만해도 가족이 다같이 텔레비젼 앞에 앉아 시간을 보냈지만, 이젠 다들 방에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통해 각자의 컨텐츠를 감상하지 않는가. 특히 학교나 직장이나 경쟁이 치열한 한국 사회에서는 더더욱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여유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이혼률은 아직 유교풍토의 잔해가 남아있는 한국에선 그나마 낮지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일반적이 되가고 있다.


이쯤 되면 이런 질문을 제기해볼수 있지 않을까 - 왜 결혼을 해야할까? 어짜피 결혼하고 나중에 사랑이 식어 인위적인 권태기를 버티다가 이혼할거면 차라리 몇년 사귀다가 해어지고, 다른 사랑을 찾는게 낫지 않을까? 이젠 여성도 충분히 남자에 기대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남녀가 같이 살 필요가 과연 있는 것일까. 가족의 필요성도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Friends에서 보여주는 진정한 가족의 상은 혈연의 가족이 아니라 친분의 가족이다. 같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과 웃음과 슬픔을 나누며 서로에게 기대기 마련. 


궁극적으로 내 저녁상대가 예측한 미래는 가족이 없어지고 국가가 대신 아이들을 양육하는 사회다. 좋은 부모가 있는 만큼 나쁜 부모도 있으니 부모가 양육하든 국가가 양육하든 아이들에 인성에 큰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국가에서 체계적으로 아이들의 성향을 분석하고 이에 알맞는 방법으로 양육하면 개인이나 사회나 더 풍성해질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다 좋지만 뭔가 꺼림칙하지 않는가? 기계같이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사회, 임의성이 결여된 사회는 살 맛이 안나는 사회일 것 같다.

Posted by 이머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