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2013. 6. 10. 13:16

 

 

참 한국만큼 권위주의적인 나라도 없다. 다른 언어에서 찾아보기 힘든 존댓말부터 시작해서, 중학교 입학부터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선후배 문화만 봐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권위주의기 팽배한 한국 사회, 그리고 그 사회의 일부분임을 인정한 고 전인권 성공회대 교수는 자신의 유년기를 통해 한국 남자의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솔직하게 풀어논다.


전인권 교수는 어릴 적 부터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났지만, 그 사랑이 독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전인권 교수는 세 아들 중 (5남매) 둘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끊임없이 칭찬해주고 무엇이든지 들어주는 어머니 아래에서 자신이 제일 사랑받는 아들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자란 것이다. 하지만 전 교수는 자신의 동생이 교통사고로 죽고 급격히 바뀌어버린 어머니의 태도에 자신이 결코 어머니의 사랑이 자신의 독점이 아니였다는 것을 깨닳는다. 어머니는 한 아들과 단둘이 있을때 애정표현을 하는 "분리된 사랑"을 통해 각 아들이 최고라는 생각을 심어준 것이다.


자신이 형이나 동생보다 더욱 사랑받는다는 생각은 전 교수를 "동굴 속의 황제"로 만들었다. 나는 훌륭하고, 나는 특별하고, 내가 세상을 움직일 거라는 황제의 마인드셋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런 동굴 속 황제는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신분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주변에 비슷한 "신분"의 사람을 보고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자신이 조금이라도 잘 알고 있는 분야가 있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소유물처럼 여기며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알 것이라고 단정한다.


전 교수는 동굴 속 황제가 어머니로부터 태어났지만 아버지 아래서 성장했다고 말한다. 밥을 먹든, 청소를 하든, 잠을 자든 아버지와 아버지의 물건이 우선이라는 질서가 있었다. 하지만 묵묵하게 이 질서를 지켰을 뿐 소통이 없던 아버지 아래에서 전 교수는 아버지에 대한 상상을 하기 시작했고, 집 안의 질서를 확대해서 자신의 세계질서를 상상해냈다. 이 수직적 질서 아래에 자신과 아버지, 그리고 다른 권위를 위치하면서 세계관이 굳어지게 된 것이다.


이 유년기에 발달된 권위주의적 세계관은 전 교수의 생각이 바뀌고, 권위를 반대하는 학생운동에 참가하고, 편견없이 진리를 추구하는 학자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무의식적인 행동과 말투, 습관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권위주의에 같혀 가족, 직장, 친구관계에서 실패를 거듭하면서 자신이 정신적으로 살해했던 아버지가 자기 자신이 돼있다는 비극을 깨닳고, 전 교수는 "나는 실패했다"라고 고백한다. 다만 이 책을 쓴 후  2년후 암으로 갑작스럽게 타계했다는 사실은 설움을 증폭시키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자신을 괴롭혔던 고뇌를 미련없게 털어놓고 갔으니 말이다.

 



Posted by 이머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