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2012. 2. 12. 13:30
들어가면서

서론에서 저자가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읽으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의문점이 저자와 가지고 있던 의문점과 비슷했기 때문에 더욱 재밌게 읽었던것 같다. 저자도 역시 청소년 시절에는 자기 자신이 "Born Again Christian"이라고 믿었고 고등학교 졸업 후 더욱 깊은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 Moody Bible Institute로 진학했다. 이곳에서 성경을 깊이 공부하면서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고 대학원으로 진학하면서 그 의문심은 커져갔다. 이 책은 이런 생각을 30년간 해온 결과물이라고 그는 말한다. 책에서 그는 연구를 하면서 자신의 신앙이 "격히 바뀌었다"라고만 말을 하는데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현재 그는 불가지론자라고 한다.


본문 비평 (Textual Criticism)

책의 앞 4장은 본문 비평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먼저 어떤 환경에서 성경 원고가 배껴져왔는지 설명을 하는데 자주 강조되는 주장은 콘스탄티누스가 개종하기 전 이런 환경은 매우 취약했다는 것이다. 저자의 계산으로는 많아봤자 로마제국의 인구의 10%가 Literate (글을 읽고 쓸수 있는 사람들)였는데 이 Literate 라는 구별도 애매모호했다는 것이다. 증거에 따르면 과거에는 글을 쓸줄 모르지만 자기 서명을 배낄 수 있어도 Literate로 구분됬다는 것이다. 게다가 보통 Literate한 사람들은 부유한 반면 초기 기독교인들은 다수가 가난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완벽하게 성경을 배끼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배끼는 사람들을 떠나서, 당시 헬라어는 문장 부호(띄어쓰기, 점 등)가 아예 없었고 자주 사용하는 단어들(하나님, 예수님 등)은 줄여서 썼기 때문에 베끼는데 실수를 만들기가 매우 쉬웠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원고를 비교하면서 어떻게 최대한 정확히 원고의 신빙성을 확인하는 여러 방법에 대해서 서술한다. 그 중 저자가 자주 사용하는것은 이것이다. 만약 어떤 구절에 두 원고가 각자 다른 단어를 사용하고 있을 경우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신빙성이 있다는 추론이다. 생각해보면 논리적인 생각이다 - 만약 기독교인인 필사인이 "예수님이 화를 냈다"라는 문장이 있으면 "예수님이 자비를 배푸셨다"라고는 바꿀 수 있지만 그 반대라면 바꿀리가 없기 때문이다.


성경을 수사하다

책의 나머지는 저자가 성경의 의심스러운 부분들을 꼬집어 내는 내용이다. 크게 나누면 [필사인의 교리를 방어하기 위해서 바꾼 구절]들이 있고 [사회적인 이유때문에 바꾼 구절들이 있다]. 이 두가지 구분아래에 여러가지 의문점을 소개하는데 그걸 다 언급할 수는 없고 내가 제일 인상깊게 받아들였던 점들만 얘기하겠다.

마가복음과 누가를 읽어보면예수님의 고난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매우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누가는 예수님의 담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마가는 인간적이고 예수님의 약한 모습을 묘사하는 반면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권위적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이 잡혀가시기 직전에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면서 천사의 위로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누 23:43-44). 권위적인 예수님이 갑자기 미약한 모습을 모이는 것이 이상할 뿐더러 만약 저 두 구절이 빠진다면 훨씬 더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따라서 저자는 필사인이 예수님이 정말로 인간이셨고 진정한 고통을 당한 것을 강조하기 위해 집어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 Docetist라는 한 "이단"의 교리는 예수님은 하나님으로 부터 온게 아니라 더 큰 신에게서 왔는데 사람들을 "2인자" 하나님에게서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속이려고 피를 흘린 척 했다는 것이다. 만약 누가복음이 예수님을 "쿨"하게만 묘사했다면(실제로 고통을 느끼지 않으셨기 때문에) Docetist들의 주장은 더 강력했을 것을 예상하고 바꾼것으로 보인다.

이것뿐만 아니라 누가가 어느곳에는 예수님이 하루만에 승천했는데 다른 곳에서는 40일만에 승천했다고 쓰기도 하고, 바울이 여자의 활동을 허락하다가 갑자기 허락치 않는 모순되는 모습들이 속속 나온다. 이런 모순들은 필사인들이 자신들이 교리를 이해하는대로 내용을 바꿨다는 주장을 배재하면 설명하기 어렵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기독교인인 성경학자들도 성경이 왜곡됬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성경이 왜곡이 되있어도 구원을 받는데 상관없는 구절들만 왜곡됬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이 부분에서는 저자의 명쾌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신학적으로 큰 문제가 될만한 왜곡이 지금 성경에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주장이 거론되기는 하지만 저자 자신도 이 주장의 방법론을 강하게 옹호하지는 않는다. 확실히 틀렸다고 확인되는 왜곡들은 기독교 교리의 기초를 뒤흔드는 왜곡들은 아니다.

하지만 이 왜곡들을 안중에 두고 성경을 다시 읽으면서 얻는 이해는 내가 전에 읽었을때와 확연히 다르다. 개역개정판에서 마가복음 1:41을 보면 예수님이 "나병환자를 불쌍히 여기사" 그를 치유하셨다. 그러나 New International Version을 보면 "Jesus was indignant", 즉 화를 내시며 치유하셨다 (저자는 후자가 더 신빙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마가복음을 살펴보면 다른 복음서들에 비해서 화를 자주 내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다). 한글 성경에서 인자하신 예수님의 모습만 보다가 실제로 예수님이 자주 화를 내시는 "인간적" 존재라면 한국 사람들은 똑같은 마음으로 예수님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만약 확실한 왜곡들이 구원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정확히 뭘 믿어야 구원을 받는 걸까?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다시 살아났다는 것? 그럼 그거 왜는 믿지 않아도 구원 받는 걸까?

그리고 더 중요한건 왜곡된 구절들이 아니라 구절들이 왜곡됬다는 사실이다. 왜곡됬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방법은 더 신빙성 있는 원서와 비교하는 건데 만약 우리가 아직도 알지 못하는 왜곡들이 있고 그것을 찾아낼수 있는 신빙성 있는 원서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제일 왜곡되지 않고 믿을만한 원서가 손꼽을 만큼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면 더욱 그렇다. 게다가 1500년의 세월을 살아남고 발견이 돼더라도 학자들의 손에 들어오지 않는 원서들이 매우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주의로 파손되거나 암시장에서 너무 높은 가격으로 인해 팔리지 않기 때문에)

정말로 성경 (특히 복음서)는 하나님이 쓰신 것일까? 심지어는 예수님이 복음서를 쓰셨다고 믿는 신자들도 있다. 나는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제자들 (마태, 요한), 그리고 제자들과 바울과 많은 시간을 보냈던 저자들 (마가, 누가) 이 복을써를 썻다는 걸 믿으면서 성경에 의지했었다. 하지만 이 저자들이 이 복음서를 썼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성경이 쓰여질때의 유행은 무명의 저자가 복음서의 이름을 "상징"으로 삼는 것이였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저자들이 쓴 복음서들 조차 왜곡됬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과연 우리는 그래도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


Posted by 이머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