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2013.04.04 11:51




난 한국 소설을 읽어본 적이 많이 없다. 그래서 뭐가 읽을 만하고 뭐가 그렇지 않은지 잘 모르는데 성석제와 함께 소설 읽기를 시작할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글에 주제가 심각해져도 성석제는 그의 특유의 유쾌함과 유치함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 이야기에 공감하게 만드는 그의 표현력에서 베테랑 소설가의 역량을 역연히 풍긴다. 편하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싸구려는 아니라는 느낌을 주는 소설가 성석제의 멋이랄까.


성석제는 시골을 배경으로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아름다운 날들"도 역시 촌뜨기들의 이야기이다. 나름 부유한 집안의 똑똑한 아이 원두와 학교에 도시락을 못싸갈 정도로 가난한 바보 진용이. 원두는 말을 더듬는 진용이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무시하지만 진용이는 그런 원두를 졸졸 따라다닌다. 그런데 어디서부턴가 이야기의 흐름이 원두로부터 진용이로 넘어가면서 갑과 을이 바뀌어 어른 진용이가 원두의 부러움을 사는, 그런 이야기다. "옛날 옛날에 장원두라는 착한 소년이 살았습니다"라고 시작한 책이 "옛날 옛날에 진용이라는 바보가 살았습니다"로 끝난다.


성석제의 이처럼 되풀이되는 "바보 주인공" 이야기에는 그의 순수한 낙관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잔머리 굴리고 서로 속이며 사는 세상 사이에서 멍청하지만 순수한 사람이 잘된다는 말이다. 또 어떻게 보면 모든 사람들이 다 고만고만한 바보들이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순수한 바보와 치사한 바보가 있을 뿐. 어짜피 둘 다 바보면 차라리 착한 바보가 더 낫지 않은가?


성석제도 다른 사람이 뭐라든 개의치 않는 유쾌한 바보인거 같다. 개인적으로 말장난을 좋아하는데 성석제는 "이거 말장난이야. 어색해? 난 재밌는데"라고 하듯이 심심할 겨를도 없게 말장난을 여기저기 던져논다. 심지어는 책 끝에 작가에 말에도


책을 통해,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어린 시절의 풍부하고 다채로운 체험을 얻어듣다보면 무척 약이 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내 어린 시절을 이야기로 재구성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약올랐던 게 약이 되었던가보다.


라며 익살스럽게 책을 마무리한다.


다만 그 때의 한국, 어린 성석제의 시골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는 읽으면서 뭔가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읽었지만 성석제와 같이 자란 세대의 사람들에겐 더욱 더 의미있고 와닿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Posted by 이머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