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2013. 2. 23. 11:59

 

보통 나는 한글로 번역된 외국 책들을 피하려고 한다. 번역 수준이 끔찍한 책들을 너무 많이 봐와서 그런 것 같다. 영한 번역이 시원찮은 판에 불한 번역은 얼마나 저조할까. 하지만 너무 읽고 싶은 내용의 책이였고 옮긴이의 파리통번역대학원이라는 타이틀이 있었기에 믿고 이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책의 스타일은 꽤나 흥미로웠다. 알리스라는 인터뷰어가 프랑스 철학과 종교, 역사의 거장을 한명씩 선정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였다. 다만 종교학자와 역사학자의 이야기는 재미있긴 했지만 생각의 여지를 많이 남기지 않았던 "스토리"만 있었다 이 책의 노른자는 철학자와의 이야기에 있었다고 하겠다.

 

 

앙드레 콩트 스퐁빌이라는 멋지고 품위있어 보이는 이름을 가진 철학자는 행복의 패러독스에 대해 설명한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욕구는 결핍의 욕구인데 이런 욕구의 충족은 또 다른 결핍의 욕구를 불러온다. 차사면 집사고 집사면 땅사고 땅사면 다른 거 하고 싶듯이 우리의 욕구는 끝이 없지 않는가. 따라서 앙드레는 우리에게 없는 것을 희망하기보다 가지고 있는 삶 그 자체, 고통과 불안, 불행을 포함한 삶을 희망하고 사랑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이 욕구는 충족될 수 있는 욕구이기 때문이다. 그는 덫붙여 가치가 있기 때문에 삶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기 때문에 삶이 가치있는 거라고 말한다.

부분적으로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앙드레가 말하는 것처럼 모든 고통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는 고통, 내일 내 재산을 다 잃어버릴 수 있는 불안,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는 불행은 견뎌보고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독재자에게 고문당하는 고통, 내 자유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불안, 내 가족이 눈앞에서 강간당하는 것을 목격하는 불행은 완전히 다른 차원에 있는 고통이다. 나는 이런 고통을 "사랑할 수 없는 고통"이라고 하겠다.

앙드레는 행복의 역사적인 관점을 간과한다. 그가 살고 있는 현재 프랑스는 저런 충격적인 고통이 없는 사회이기 때문에 가질수 없는 것을 희망하지 말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불행을 사랑하자는 여유있는 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인류가 여기까지 와 저런 여유로운 말이 나올 수 있게 된 이유는 끊임없이 자유와 건강, 풍족함 같은 가질 수 없는 것을 희망하고 고난의 산을 넘어 진보해 왔기 때문이다. 과연 앙드레가 페스트가 난무하던 중세 시절에 살았거나 현재 북한에 살고 있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앙드레의 행복관은 21세기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말이긴 하다. 또 그는 인생이 불행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우리의 고통과 불행과 벌이는 싸움을 사랑하는 것이 행복해 지는 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아직 받아들일 수 없는, 인권을 침해하고 영혼에 지울수 없는 흔적을 남기는 끔찍한 불행들이 존재한다. 앙드레의 말을 받아들여 우리의 행복을 되찾고 더 나아가 우리보다 더욱 불행한 사람들이 적어도 그런 "사랑할 수 없는 고통"을 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된다. 

 

Posted by 이머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