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2012. 8. 10. 12:51




메키아라는 이북서점에서 900원에 베스트셀러 10권을 판단다. 솔깃에서 이용권을 구입해보니 거의다 쓸데없는 자기개발서이구 그나마 읽을책은 이것밖에 없더라. 그래도 아이패드로 읽을 수 있고, 900원이라 아깝지 않았다.


책의 주된 내용은 철학적인 관점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이다. 읽으면서 놀랐던건 내가 저번학기에 들었던 비교문학 수업에 나왔던 벤야민, 지멜, 보들레르 등이 다 나왔던 것이다. 어려운 수업이였는데 저자가 책을 워낙 읽기 쉽게 내용을 풀어놔서 똑같은 내용을 더 잘 흡수할 수 있었다. 생각할 요지점을 풍부하게 찾을 수 있는 책이였다. 너무 많아서 다 여기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돈을 신격화하는 자본주의 사회

십계명을 보면 첫째 계명에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라고 한다. 이를 토대로 많은 설교들이 돈의 우상화, 즉 돈의 신격화가 곧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하며 성도들을 꾸지람한다. 하지만 기독교라는 틀 밖에서 돈을 바라본 저자는 흥미스럽게 기독교와 돈에 기반한 자본주의의 공통점을 찾아낸다. 


"구두쇠에게 은행이 교회라면, 10만원은 자본주의라는 신에게 받치는 기도인 셈"


저자는 도박에서 느끼는 희열이 종교적이라고 주장한다. 도박에서 이길 경우 그 원인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경이로움을 느끼는데 이길 확률이 지극히 낮기 때문에 그 경이로움이 증폭된다 (신이 기도를 들어주는 것처럼). 그리고 도박에서 자신이 이길 확률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도박 자체를 탓하지 않는다. (신을 탓하지 않는 것처럼)



자유란 무엇인가

저자는 자유를 두개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칸트가 주장하는 "양적 개인주의"의 소극적 자유, 그리고 니체가 주장하는 "질적 개인주의"의 적극적 자유가 바로 그것이다. 도시라는 곳에선 사람들이 서로에게 냉담한 태도로 대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신경과민으로 지쳐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시의 암묵적 윤리는 서로를 간섭하지 않음으로써 모두에게 자유를 허락하는 것이다. 수동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 소극적 자유는 때론 사람을 고독하게 만들기도 한다. 반면에 적극적 자유는 특수성비교불가능성으로 구분된다. 짐멜의 말을 응용하자면 - "우리가 자신만의 본성을 따른다는 사실 - 여기에 바로 자유가 있다 - 이 자신에게나 타인들에게 확연하게 드러나는 때는 바로 그 표현된 본성이 다른 사람의 표현된 본성과 구분될 때이다. 우리 각자가 다른 어느 누구로도 대체될 수 없다는 점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방식이 다른 사람에 의해 강요될 수 없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짐멜의 글을 읽으면서 어린 나의 모습을 되찯는 듯한 기분이였다. 중고등학교 때에 아직 간단했던 나의 삶에 대한 철학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나를 차별화시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고 생각하면 나라는 존재는 없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너무 맹목적으로 이 철학을 따른 나머지 너무 자만하게 생각하고 쓸데없이 눈에 띄이는 짓을 많이 했다.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꺼리고 비오는 날 오토바이를 타고 교회가던 날들이 생생하게 돌아온다. 한국에 와서는 180도 바뀌어 사람들을 닮으려 하고 적응하려고 했다. 하지만 요즘 생각이 드는건, 그리고 이 글을 읽으면서 생각이 드는것은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되지만 어느 정도 나의 어릴 적 뻔뻔한 모습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그때는 자신감으로 넘쳤고 무엇이든 열심히 할수 있는 의지가 있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중요한 요점을 집자면 자본주의가 약속하는 자유, 즉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어디서 사는지의 자유는 얼핏보면 개인의 개성과 욕망을 표현할수 있는 바람직한 것이지만 완전한 자유는 아니다. 자본주의의 자유, 즉 자본주의의 질적 개인주의는 소비의 자유만 주고 생산의 자유는 주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기서 생산의 자유에 대해서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지만 이렇게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 - 산업자본주의에서 노동자는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경우가 드물고, 노동자 개인이 원하고 즐기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이 바로 생산의 자유인 것이다. 자신의 노동에 긍지를 가지는 것, 즉 장인정신이 짐멜이 바라던 온전한 질적 개인주이가 아닐까?  



산업자본주의와 허영심

위에서 언급한 적극적 자유, 즉 다른 사람과 차이를 두려고 하는 특수성 추구는 사람들의 허영심을 부추긴다. 남들이 가지지 못하는 것을 가짐으로써 자신을 차별화 하려는 것인데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변질이 되서 물질로 자신을 차별화 한다. 그려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다 - 새로운 패션, 가구, 기기들을 사려면 수시로 사야되고 그리고 신형들이 구형보다 비싸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비를 많이 해야 남들과 차별화를 할수 있는 것이고, 산업자본주의는 이런 신형을 상류계층과 차별성을 광고를 통해 연관시켜서 사람들이 구매를 하도록 현혹한다.




미래를 바꾸려면

부르디외 왈 "미래의 현실주의적인 전망은 실제로 현재에 직면할 수단을 지닌 사람들에게만 접근 가능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 도태한 자본주의를 떨치기 위한 필수조건이 무엇일까? 부르디외는 사람들이 경제적 여력을 확보해야 된다고 한다. 알제리의 농민들을 예로 드는데 농민들은 생계를 위해 전적으로 의지한다. 날씨가 좋으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죽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을 두려워하고 따를 수밖에 없는데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면 자연에 의존하지 않아되 될 만큼 경제적 여력을 확보해야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자본주의 체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을 만큼 최소한의 생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일단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상태에서만 자신의 미래를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고 사회를 현실적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계가 위태로운 사람들이 일으킨 혁명중 그들이 새로운 체계의 주체가 되어 사회를 바꾼 케이스는 아직 없다. 따라서 저자는 가라타니 고진이 강조한 "생산-소비 협동조합"이라는 산업자본주의의 대안을 추진한다. 이 조합을 통해서 우리가 우리의 삶과 환경에 직면할 수 있는 안정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유쾌한 파괴

현재 경제사회는 사치를 허용한다. 산업자본주의가 이윤창출을 통해 물질적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잉의 경제적 여유를 제대로 소멸하지 않으면 사회의 건강을 파괴하게 된다. 사람이 필요한 영양분보다 더 많은 영양분을 섭취하면 비만에 걸려서 여러 병에 걸리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실제로 산업자본주의는 과잉의 자본을 창출하고 파괴를 하지 못한 나머지 2차례의 세계전쟁을 일으켰고 지금도 경제적 제국주의를 통해서 개발도상국 국가에 많은 나라의 국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그래서 과잉의 "유쾌한 파괴"가 필요한 것이다. 저자는 유쾌한 파괴의 예로 "선물"을 제시했는데 그 이유는 선물은 산업자본주의의 제품과 달리 기능성(핸드폰)이나 사회적 상징(골프장 회원권)으로 가치가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생산-소비 협동" 에서 서로가 가지고 있는 생산성을 교환하는 교환하는 것이 선물을 교환하는 것이랑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개인적으로 인간이 영양적 과잉을 운동으로 "유쾌하게 파괴"하듯이 경제적 과잉을 자원봉사로 파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시간과 돈을 남을 위해 사용하면서 모두가 더 잘 살수 있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서 이상적인 사회를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이런 이타적인 동기보다 자본주의의 개인을 위한 소비의 유혹이 더 클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다. 자본주의의 상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그 대중적인 인식을 통해서 어렵겠지만 자본주의의 유혹을 떨처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Posted by 이머츄어
독서리뷰2012. 7. 30. 14:38

"What juicy burgers, ferraris, pornography, and gift giving reveal about human nature" 라는 의 부제목이 나의 눈길을 확 사로잡았다. 부제목에 나온 토픽,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7 deadly sins"의 뿌리에 대해서 저자가 서술한 부분을 눈여겨 보았다.

 

Juicy Burgers -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지방이 에너지 포함량이 많은 만큼 지방이 첨가된 음식의 맛을 좋아하게 하는 유전자가 살아남았기 때문에 인간이 기름이 듬뿍 들어간 햄버거를 좋아한다는 주장이다.

 

Ferraris - 여자들이 남자를 잠재적 짝으로 평가할 때 남자의 사회적 지위는 큰 영향을 끼친다. 남자가 포드를 타고 있을때보다 페라리를 타고 있을때 여자들은 평균적으로 그 남자를 더 매력적으로 생각한다는 통계가 있다. 스포츠카를 소유한다는 것은 보통 돈과 사회적 지위가 있을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자들은 스포츠카를 몰때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올라간다. 반대로 남자는 여자가 무슨 차를 타든지 상관하지 않는다는 통계는 남자들의 스포츠카에 대한 사랑이 진화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Pornography - 남자들은 다른 남자들이 여자와 성관계를 가지는 장면을 볼때 성적으로 흥분이 된다. 실험에 따르면 남자는 남자보다 여자가 많은(polygynous) 동영상보다 여자보다 남자가 많은 동영상(polyandrous)을 선호하며, 후자의 동영상을 볼때 정자의 움직임이 더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남자가 여자를 취하는 모습을 보고 흥분해서 경쟁심을 느끼게 하는 유전자가 아무것도 느끼게 하지 않는 유전자보다 퍼질수 밖에 없다는 저자의 주장이다.

 

Gift giving - 모든 생물의 기초적인 진화는 살아남기 위한 진화, 즉 자신의 유전자를 최대한 넓이 퍼뜨리는 것이다.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가족이나 친지를 도우려고 하는 경향은 당연한 것이다. 실험에 따르면 피가 엹어 질수록 친척을 위해 희생할 의지가 줄어든다고 한다. 선물하는 행위는 친척의 생존을 바라는 유전자에 비롯한 행동 중 하나다.

 

피가 섞이지 않은 친구들을 위한 이타적인 행동은 별개다. 장기적으로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생존을 하기 위해서 이롭기 때문에 이타적인 생각을 하게하는 유전자가 살아남은 것이다.

Posted by 이머츄어
독서리뷰2012. 7. 20. 18:26

대충이라도 써야 독서리뷰를 쓰는 습관을 기를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한국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아직 관계형성과 사교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이 책을 들었다. 영어를 가끔씩 한국어 명사인듯이 써가면서 글을 쓴 저자의 스타일이 흥미로웠다. 나한테는 오히려 이해력에 도움이 됬던 글쓰기 스타일이였다.



중요하다고 생각한 문장들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상대가 좀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는 듯하면 못 본 척해주고, 익숙한 일을 하는 듯하면 곁으로 다가가서 창찬도 해주고 성원도 해주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익숙하고 잘하는 것을 사람들 앞에서 할 때 더 잘하고 반대로 자신이 어색하고 잘 못하는 것을 사람들 앞에서 할 때 더 못한다. 전자는 사회적 촉진이라 하고 후자는 사회적 억제라고 한다. 사회적 억제를 잘 피하지 못할때 관계가 더 어려워 지고 사회적 촉진을 잘 살릴때 관계가 더 쉬워진다. 부부간에 운전연수교육이 좋은 예다. 아내는 익숙하지 않은 운전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라는 사람이 보고 있기 때문에 더 어려워 한다. 남편은 운전에 익숙치 않은 아내가 운전을 하기 때문에 사고라도 날까 안절부절하고 신경이 날카롭게 된다. 그래서 눈감아 주진 않을망정 더 훙분하면서 아내에게 거칠게 비판을 한다. 이렇게 싸움이 일어나고 관계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역할 때문에 사람이 바뀌었다는 것을 인정해 준다면 종전과는 다른 관계로 업그레이드하기도 쉬울 것이다."


사람에게는 여러 상황에서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실제 모습과 조금 다른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이 가면을 페르소나 (persona)라고 한다. 저자는 짐바도 (Zimbardo)의 모의감옥 실험을 예로 들어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주어진 상황과 역활에 따라서 얼마나 바뀔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렇게 다른 페르소나를 가지는 것이 나쁘고 좋고를  떠나서 어쩔수 없이 일어나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인식하며 다른 사람을 대하라고 저자는 권유하고 있다.



"우리는 남이 하는 것은 다 해야 직성이 풀린다. 남이 가진 것은 다 가져야 한다. 그러다 보니 관계라는 것이 협조적 관계가 아니라 경쟁적 관계가 주를 이루게 된다. 대개의 관계가 서로 도와주고 북돋워주는 굿이 아니라 서로 경쟁해서 이겨야 하는 것으로 변질된다."


나에게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문단이다. 대학입학까지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라지려고 노력을 하며 성취감을 느꼈는데 미국에서 극도의 개인주의에서 비롯된 공감대의 결여를 경험하고 나서 평범해지려고 노력을 했다. 서로 너무 다르다 보니 서로를 이해하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피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온다음에 내 주변 사람과 닮아지려고 노력을 했던것 같다. 안보던 드라마나 코메디 프로도 챙겨서 보고 보편적인 말투를 사용하고 말이다. 하지만 또 이렇게 살다보니 어느 정도의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낄수는 있지만 이렇게 살다간 고만고만하게 살다가 끝날거 같다. 다시 한번 나 자신을 차별화 하되, 어느정도 유행과 사람들의 보편적인 모습들을 이해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 선에서 행동해야  될거같다.  



모라토리엄 인간형: 원래는 사람이 자립할 수 있을 때가지의 기간 (청년시기)을 모라토리엄이라고 한다. 이 단어를 사용해서 현재의 자신을 거부하고 미래에 자신의 이상적인 모습이 있다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고 모라토리엄 인간형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는 자신의 불행, 실수, 게으름을 정당화하고 미래에 모든게 잘 될거라는 안이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어쩌면 나도 모라토리엄 인간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맨날 "살다보면 나중에 잘될꺼야"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가? 미래에 잘될려면 지금 잘해야 된다. 지금이 중요하다. 지금 열심히 살자.


Posted by 이머츄어
랜덤고찰2012. 5. 5. 13:28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거의 화를 내지 않는다. 잘못한 사람의 행동이 그의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의 행동은 그의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라왔던 환경, 그리고 그 사람의 뇌의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제 친구가 무책임하게 약속을 어김에 화가 나서, 화를 내는 정당성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사람의 행동을 사람으로부터 분리하는 이유:

1. 사람은 자신이 어리고 자아의식이 부족할 시기에 자라온 환경에 대한 책임이 없다. 만약 자라는 환경에서 성격이 삐뚤어 졌다면, 환경을 욕해야지 사람을 욕하면 안된다.

2. 미래는 결정이 되어있다. 사람의 몸의 구조 (특히 뇌의 구조)와 주변 환경에 변화 (사람에 인한 것이나 자연에 의한 것이나)는 다 결정이 되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모든 인간들의 몸과 모든 자연의 구조와 그것들의 역학에 대한 지식이 있고 그 지식을 다 계산할 수 있는 컴퓨터가 있다면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삐뚤게 자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고 해서 다 용서가 될까? 만약 모든 인간에게 선천적 기본 도덕이 있다고 믿는다면 용서를 할 수 없다. 선천적 도덕이 존재하는지 아닌지, 그리고 존재한다면 어떤 도덕이 존재 하는지 알아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확실히 "책임" 이라는 도덕이 존재한다고 확신 할 수 있으면 어떤 사람이 무책임이 즐비한 환경에서 자랐더라도 그 사람이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화가났었던 현실에 적용을 해보자. 내가 화가 났던 이유는 동아리 친구들이 엠티를 가자고 했는데 당일 전에 못가게 됬다고 해서 화가 난 것이다. 결국 그들의 잘못은 무책임이다. 만약 엠티를 가자고 했으면 책임을 가지고 참석을 해야 되는 것이고 자신이 다른 문제들 때문에 참석을 못 할 것 같으면 아예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 잘못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물론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일을 벌리지 않는 것이 잘못을 범하지 않는 최선에 방법이다. 하지만 반대로 일을 벌려서 예측하지 못했던 좋은 일이 생기는 수도 있다. 어찌 됬든 세상이 돌아가려면 누군가 어떤 일들을 벌려야 된다. 일을 벌리는 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데에 있어 빠질 수 없는 만큼 화를 내는 것도 빠질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화를 내는 것은 정당화된다.

 

2번은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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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머츄어
랜덤고찰2012. 4. 26. 20:10

페이스북을 보고, 사람을 만나서 얘기하고, 카톡을 하던간에 공통되는 단어를 찾는다. "멘붕" "망했다" "학점아 미안해" "다음학기부터는" 등등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징징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2가지 타겟을 비판할 수 있겠다. 시험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사회, 그리고 시험치는 사람들.

 

학점 = 취업 이라는 공식에서 비롯되는 압력은 당연한 이유고 그것과 다른 관점에서 사회를 비판해보고 싶다. 찝어 말하자면 대학이다. 한국 대학의 문제점 중 하나는 수업이 재미가 없고 강의의 질이 저조하다는 것이다. 외관적으로 보이는 랭킹을 올리기 위해서 논문 수를 잣대로 승진을 시키니 학부생들을 가르치는 데에 소홀히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듣고 있는 수업에 만족해 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될까? 만약 그들이 정말 열정적으로 배울 수 있는 수업이 제공된다면 이렇게 징징짜지는 않을 것이다. 재밌는 공부를 하는데 누가 불평한단 말인가? 더 나아가 대학에서 자기 적성에 맞는 전공을 고를 기회를 주지 않는 입시 체계도 비판해보는 바이다.

 

그리고 대학만 욕먹을 것이 아니라 학생들도 욕을 먹어야 한다. 하고 싶은 전공을 골라야지 돈되는 전공을 고르다 보니 공부가 재미있을리가 있나. 그렇게 취직을 하고 싶으면 꾹 참고 불평하지 말면서 공부를 하던가 아님 공부와 돈을 서로 때어놓고 진지한 태도로 공부에 임해야 할 것이다. 미래를 보면서 수업을 고르거나 친구들이 같이 듣는다는 수업을 고르기보다는 최선을 다해 자신을 알고 수업에 대해서 조사를 한 후 자기가 진심으로 원하는 수업을 고른다면 과제도 중간고시도 기말고시도 재밌을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번 중간고사는 시험이 2개밖에 없어서 거의 스트레스 없이 시간을 보냈다. 공부도 찔끔 하긴 했지만 첫 시험 전날에 League of Legends를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험 분량이 많았어도 크게 다르진 않았을꺼 같다. 지금 듣고 있는 수업에 대해서 꽤 만족하고 있는 편이기 때문이다. Classical Literature에서 읽고 있는 일리아드는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더 재미있어 지는 것 같다.

 

현재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대다수의 공부는 비효율적이다. 사회와 개인 둘다 반성하고 순수한 공부를 지향하는 대학을 만드려고 노력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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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머츄어
내가사장2012. 4. 14. 02:53

가끔가다가 생각을 한다. "아, 이렇게 하면 때돈 벌수도 있겠는데!"

 

그런데 1시간후에 잊어버린다.

 

그래서 기록하고 싶다. 혹시 모르지 않나, 정말로 창업을 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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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머츄어
랜덤고찰2012. 4. 10. 02:12

잠언을 읽다보면 침묵을 격려하고 말 많이하는 것을 깍아내리는 구절들이 있다. 어릴 때부터 지혜로운 자는 침묵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필요한 말만 하는 습관을 길렀고, 지금도 내 자신이 말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너무 어릴때부터 성경말씀을 충실히 따른 것에 부작용이 있었다고 할까?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침묵을 지키는 습관이 나의 성격에 있어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가만있음 중간을 간다는 말이 있다. 비슷하게 말이 적어도 중간은 간다고 생각한다. 말하는게 없으니까 딱히 다른 사람들이 나를 나쁘게 생각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나를 좋게 생각할 이유도 없다. 중간을 간다는 생각을 하며 침묵을 하면 나의 대인관계 상태에 대해서 나름 만족을 하게 되고 그 상태를 향상시킬 동기를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중간을 간다는 생각보다는 최고를 간다는 생각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말이 많으면 당연히 침묵을 지킬 때보다 말실수를 많이 해서 안좋은 인상을 남길 것이지만 그러면서 무슨 말을 해야되고 무슨 말을 하지 말아야 되는지 경험을 얻는다. 이러한 경험이 쌓이면서 성공적인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방법을 배우고, 결과적으로 말을 많이 함으로 나의 대인관계 실력을 가능한 최고로 끌어 올릴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말은 예상치 못한 미래의 관문이다. 다양한 말을 하다보면 그 말을 원인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일이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다 경험이 되고 삶을 이해하는데 있어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침묵을 지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내 미래를 내 자신이 속박하는 것이다.  

 

거차없고 뻔뻔하게 말하자. 그것도 정도가 있어야 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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