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2013. 2. 4. 01:23








놀아야 성공한다.


열심히 일해야 성공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의 반대가 노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인에게는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다. 의도적으로 독자들에게 충격을 줘서 책을 집도록 만드는 제목이다.



왜 놀아야 하는가?


독자들은 책의 제목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은 있을 것이다. 내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1초도 아까운 이 세상인데 그 아까운 시간을 노는 데 투자하라니 얼마나 생뚱맞는가. 하지만 김정운 교수는 한국사람들이 놀이에 대해 시대착오적인 죄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1945년 독립 후 제대로 먹을 것 조차 없었던 한국인에게, 그리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짖밟았던 군사독재 정권아래에서 행복은 사치일 뿐이였다. 90년대에 살만해져서 여유를 가지기 시작하기 무섭게 IMF가 터졌다. 좀 놀아보겠다고 하다가 호되게 혼난 것이다. 


하지만 20세기에 성공의 지름길이였던 성실과 근면은 21세기의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21세기의 지식정보사회에서는 정보와 정보들의 관계를 다르게 정의하고 맥락을 바꿀 수 있는 창의성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놀이를 통해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하여 재미를 느끼는 "노는 놈"인 것이다. 노는 사람이 창의적인 사람이다.  



노는 것은 무엇인가?


한국에서 논다고 하면 뭘 할지 뻔하다. 폭탄주. 룸살롱. 노래방.


김정운 교수는 한국의 경제는 선진국 수준일지라도 여가문화 수준은 아직 후진국이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한국이 계속 이렇게 놀다가는 제2의 IMF가 찾아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왜냐하면 최근에 주40시간 근무제를 통해서 여가시간이 늘어났지만 대책없는 여가시간은 재앙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유럽과 달리 50년만에 인위적으로 주40시간 근무제를 실시했기때문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김정운 교수는 제대로 된 여가문화 없이는 추가적인 경제발전은 물론이고 이혼률 증가와 출산률 감소같은 사회적 문제가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럼 "제대로" 논다는 것은 무엇인가? 김정운 교수는 노는 것을 적극적으로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놀이의 5가지 특징이 비실재성, 내적 동기, 과정지향성, 자유-선택, 즐거움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놀이라는 개념은 특정한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다 다른 주관적인 것이고 당신에게 무엇이 재미있는지는 당신이 찾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놀이는 노동과 여가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개념이다. 다른 말로는 일도 재미있으면 놀이라는 것이다.



재미란 무엇인가?


영화를 보면 주인공들은 참 박진감과 로맨스가 넘치는 삶을 사는 것 같다. 눈을 돌려 우리 자신의 인생을 보면 참 심심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김정운 교수는 사람들이 재미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된다고 말한다. 세상이 뒤집어지는 재미나 사랑에 대한 환상은 다 할리우드식 상업주의가 만들어낸 집단적인 마약 중독이라고 비판한다. 이런 재미는 오래 가지 못하거나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자극적인 재미를 찾게 만든다. 재미의 대한 환상을 버리고 사소한 재미를 즐겨야 한다. 내 친구중 한명은 자신이 랩하는 것을 녹음하는 것을, 다른 친구는 사슴벌레 모으는것을 좋아한다. 이런 재미가 오래가는 진정한 재미이고 또한 우리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을 담보하는 재미이다.



삶의 목적은 행복


다 행복하자고 삶면서 똥꼬빠지게 열심히 일하는 우리는 과연 행복한 것일까. 우리는 목표를 가지고 앞으로 달려가지만 그것을 가지면 금방 질리고 새로운 것을 원할 것을 너무 잘 안다. 행복은 결과적인 것이 아니다. 내가 재미있어하는 일을 하고 내 놀이를 다른 사람과 같이 즐기는 삶의 과정 그 자체가 행복이라는 것이다. 잘 노는 만큼 행복해진다.



Posted by 이머츄어
랜덤고찰2013. 2. 2. 13:21

It was with great delight that I picked up a book called "Moral Clarity" in a library since its table of contents and the first few pages seemed to talk about morality and ethics in terms that made a lot of sense to me. Reading the book turned out to be a perplexing experience though. I could easily sense that this book contained invaluable information on its subject, and the author did a brilliant job of making philosophy actually readable. However, the subject being morality, it was still hard to follow, and there were so many important points everywhere that I eventually lost my way.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을때 "Moral Clarity"라는 책을 발견했다. 책의 목차와 첫 페이지들을 살펴보면서 "내가원하던게 바로 이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도덕에 대해서 생각했던 부분들을에 대해 자세히 설명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책을 다 읽어본후 당혹스러웠다. 책이 확실히 정말 가치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고 철학자인 저자는 보통 사람이 읽기 쉽도록 잘 풀어 써줬지만 주제가 도덕이다 보니 내용을 계속 따라가기 어려웠고 여기저기 중요한 내용이 너무 많다보니 결국 나는 길을 잃었다.


In short, the problem was that although some parts of the book stimulated me to come up with some brilliant insights on morality, but the book being so rich in content, I couldn't quite make sense of the whole book. This happens often when I read academic books, and I feel really horrible because firstly you spent so much time tackling the book (3 weeks for this book) but feel that after all the hard work, you don't quite know what the author is trying to say to you, and secondly because I know there is something precious in the book, yet I can't actually get to it.


짧게 말해서 제일 큰 문제는 내가 책을 읽으면서 이런 저런 부분에서 도덕에 대한 환상적인 발상을 얻을 수 있었지만 책의 내용이 너무 풍부하다 보니 책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다른 학술적 책을 읽을때 자주 일어나는 일인데 이럴 때마다 기분이 나쁘다. 정말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책을 읽었는데 결국 저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제대로 이해를 못했을 뿐더러 책에 정말 가치있는 내용이 있는 것을 아는데도 그것을 움켜쥐지 못한다는 것이다. 


This is what I think happens. It was really difficult for me to read more than 30 pages of these kinds of books a day since the reading requires me to give serious thought to its every pages. Naturally, I have to read it over a long period of time, and when I get down and try to write a book review on it, I realize that I forget the inspirations of thought that the book had given me weeks ago. 


학술적 책은 페이지 마다 깊은 생각을 요구하기 때문에 읽는데 시간이 오래걸리고 하루에 30장 이상을 읽기 힘들다. 그래서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읽게되고, 나중에 자리에 앉아 독후감을 쓰려고 할때면 벌써 책을 읽으며 얻었던 발상들을 다 까먹어버리는 것이다.


This doesn't usually happen with non-academic books. I can understand them easily enough, read them quite quickly, and grasp the book's central issue. So I just read them, sometimes with a help from some post-it notes, and write up a review. However, I came to think that academic books require a different approach. It would be similar to what I would do in a college course: read chapter by chapter, understand it fully, write something on it, and move on to the next chapter. After I have wrote on every chapter of the book, I would be able to remember the important contents of the book and come up with a wholesome review. 


비학술적 책을 읽을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쉽게 이해하고, 빨리 읽고, 책의 핵심 내용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책들은 그냥 읽고 독후감을 바로 쓴다. 가끔식 포스트-잇 노트를 사용할때도 있긴 있다. 하지만 학술적 책을 읽을 때는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한것 같다. 대학 강의에서 과제물을 읽듯이 읽는 것이다. 한 장 씩 읽고, 그 장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장에 대해서 독후감을 쓰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모든 장에 독후감을 쓴 후에 책에 대한 전체적인 독후감을 쓸 때 그동안 쓴것을 보면서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I imagine, would be quite time consuming, but I simply cannot go on reading books and feel shit about not understanding it well enough. I wonder whether I am the only one who forgets what one reads so easily, or whether I am not alone.


이런 방식은 아마도 많은 시간을 소모할 것이다. 그러나 더이상 책을 읽고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기분 상하고 싶진 않다. 나만 이렇게 책의 내용을 까먹는 건지 다 그런건지 궁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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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머츄어
독서리뷰2013. 1. 24. 13:09




내가 이 블로그를 처음으로 쓰기 시작하게 된 이유는 내 종교적 정체성을 더 확실하기 위한 것이였다. 그래서 맨 처음 포스트는 성경을 탐구하겠다는 취지로 프린스턴대 교수 일레인 페이절스가 쓴 Gnostic Gospels라는 책에 대해서 썼다. 이 책에 따르면 성경학자들은 1945년 Nag Hammadi에 발견된 책들을 통해 초기 교회 시절에 4복음서 외의 복음서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페이절스의 또 다른 책 Revelations는 요한계시록 외 다른 계시록들이 존재했고, 왜 요한계시록만 신약성경에 포함됐는지 설명한다.


악한 제국 로마를 타도하는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요한이 이 책을 쓰던 시대의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때는 막 로마가 이스라엘의 반항을 제압하고 예루살렘을 처참히 파과시킨 후였다. 유대인들에게는 예루살렘의 성전이 무너졌다는 것은 큰 충격과 심적으로 고통스러운 사건이였을 것이다. 철저한 유대인이였던 요한에게 이런 상황이 마가복음 13장에 나오는 재난과 환난,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의 내용과 잘 맞아떨어졌을 것이다.

또한 요한계시록의 내용이 그 시대의 이벤트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고 말할수 있겠다. 그 당시 로마 제국 곳곳에는 거대한 황제의 석상들이 지어졌는데 이런 사실은 적그리스도의 석상이 곳곳에 세워지는 요한계시록의 내용과 흡시하다. “불붙는 큰 산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는 것은 그 시대 최대 자연 재해였던 베수비우스 화산에 대한 요한의 반응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 12장에 나오는 용이 태어난 아기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장면에서 용은 로마, 임신한 여인은 이스라엘, 태어난 아기는 예수님을 묘사한 것이다. 그리고 많은 학자들은 게마트리아 방식을 사용해서 짐승의 숫자 666이 네로 황제라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보면 요한계시록은 로마를 상대로 한 선전물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한 로마 황제를 적그리스도로 설명하고 재난과 환난의 시대에 구원받으려면 적그리스도인 로마 황제에게 굴복하지 말고 저항하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주장할 수 있겠다. 이런 선전물을 로마 제국의 검열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징주의와 모호한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요한은 누구인가

요한계시록의 저자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보통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이자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이라고 생각할것이다. 성경학자들도 수백년동안 그렇게 생각해 왔지만 최근의 연구결과를 보면 그렇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문맥적 비판을 통해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을 비교해보면 글의 스타일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게다가 요한계시록의 요한이 사도 바울의 신학을 강경하게 반대했다는 페이절스의 설명을 읽어보면 심지어 왜 요한계시록이 신약성경에 포함되었는지 의문이 들 것이다.

먼저 이해해야 될것은 신약에 보이는 것보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베드로와 바울이 부정한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해 다툰 것은 빙하의 일각일 뿐이다. 그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유대인들에게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유대인과 같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바울의 가르침은 충격이였고, 그 가르침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요한계시록의 요한이 이런 유대인 중 한명이였다고 생각 하면 요한계시록을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은 자세히 읽어보면 유대인을 위한 계시라는 느낌을 받는다. 처음부터 요한은 이스라엘의 12부족중 선택된 사람들만 구원될것이라고 말하고,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하지만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을 향해 "사탄의 성전"이라고 부른다. 영적으로 유대인, 즉 선택받은 민족이 됐다고 생각하는 이방인들을 거부하는 것이다.  

물론 요한이 바울의 가르침에 동의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요한이 비판하는 "사탄의 성전"이 이방인이 아니라 유대인답게 행동하지 않는 유대인들을 비판한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요한계시록에는 바울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기 때문에 요한이 비판하는 "거짓 선지자"가 바울인지 아닌지는 단정할 수 없다. 단지 두가지 완전히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요한계시록이 신약성경에 포함되기까지

요한의 계시와 달리 세상의 종말은 오지 않았고 오히려 적그리스도라고 묘사된 로마 황제(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로마의 정식 종교로 삼으면서 핍박의 종말이 왔다. 이 요한계시록을 재해석해서 정경에 포함시킨 사람이 아타나시우스다. 아타나시우스는 알렉산드리아의 교주로써 니케아공의회에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주장했고 정경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이 시대는 니케아 공의회가 열렸던 시대였던만큼 기독교인 서로를 이단으로 몰아내면서 자신의 신학이 옳다고 싸우던 시대였다. 이 와중 아타나시우스는 이단을 없에고 교회 위계 질서와 정경을 만들어 교회를 통일하려고 노력했다. 아타나우시우스는 심지어 "안드레의 인생"이란 책을 통해 사실을 바꿔가면서  통일성을 형성하려고 했다. 그 당시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존경받았던 안드레는 아타나우스가 주장하는 위계와 정경과는 달리 더 자유로운 질서를 추구했는데 아타나시우스는 안드레가 아타나시우스의 주장을 옹호하도록 비치게 책을 쓴것이다. 성 어거스틴도 이 책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고 초기 교회의 위계질서를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아타나시우스가 요한계시록을 정경에 포함한 이유는 아마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요한은 요한계시록 22:18에서 누구든 자신의 책에서 내용을 더하거나 빼는 사람을 하나님이 심판하실 거라고 말한다. 더 이상 뺄수도 없고 더할 수도 없는 정경을 필사적으로 원했던 아타나시우스에게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았을리 없다. 게다가 아타나시우스가 재해석한 요한계시록은 이단을 깡그리 없에겠다는 그의 전념과 일치했다.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로마황제가 적그리스도일리는 없으니 기독교 안에 있는 이단들을 적그리스도와 사탄으로 해석한 것이다. 당시에 요한계시록 외의 여러 계시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타나시우스가 요한계시록을 선택한 이유는 이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마치며


페이절스의 글을 읽어보면 자신의 주장과 근거를 제시하기만 하고 결정은 독자에게 맡긴다. The Gnostic Gospels와 Revelations를 둘다 읽어본 후 느끼는 것은 4복음서가 신약성경에 포함되고 도마 복음서, 유다 복음서 같은 그노시스파 책들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이해 할 수 있다. 전통 기독교의 교리가 그노시스파의 교리보다 더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전통 기독교 교리와 아예 기반이 다른 그노시스파 복음서가 신약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요한계시록은 반대로 포함되지 말아야 할 책이 포함된것 같다. 다른 계시록보다 더 정당성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아타나시우스의 지지 때문에 포함됬다는 느낌이 강하다. 사실 신약에 포함될 책을 정할때 제일 논란의 소지가 많았던 책이 요한계시록이다. 만약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지지 않은 책이 성경에 포함되있다면, 성경의 다른 책들도 과연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것인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Posted by 이머츄어
시사지껄2013. 1. 17. 18:41

 

 

레미제라블이 요즘 장안의 화제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트로피를 휩쓸고 수많은 영화 전문가들과 관객자들의 호평을 사고 있다. 경향신문을 보니 아예 레미제라블 기획을 하고 있다. 심지어 영화관을 거의 안가시는 우리 어머니도 보러 가셨다. 덕분에 나도 따라가서 정말 색다른 영화를 볼 수 있었다.

 

 The musical-adapted-to-movie Les Miserables is THE hot potato in town. It has swept the academy awards and received stellar praises from various cinema experts and viewers. The KyungHyang Ilbo is running a special section for the movie. Even my mother, who almost never goes to the cinema, went to see it. I went along with her and was shown a truly special and remarkable movie.


일단 그 어마어마한 분량의 책을 충실히 영화로 만들어 낸 제작가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코제트를 위해 자신의 몸을 팔아야 했던 판틴, 자신의 이름으로 처형선고된 피고인의 무죄를 증언한 장발장, 생명의 은인을 차마 체포하지 못한 자베르 등 중요한 도덕적 딜레마를 잘 강조했다고 생각했다. 

 

Firstly, I want to give my praises to the producers who successfully came up with a movie based on a book that is horrendously thick. I thought that the director did a good job of focusing on the scenes of moral dilemma, like Fantine who had to sell her body for Cosette, Jean Valjean who saved a criminal accused of being Valjean, or Javert who could not bring himself to arrest Valjean who had saved his life.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보고 놀란 것은 나 자신의 반응이였다. 왠만한 감동적인 영화를 봐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데 판틴이 코제트와 마리우스 곁에서 죽어가는 장발장을 데려가는 장면에서 그만 눈물이 멈출 수 없이 터진 것이다. 장발장의 죽음이 슬퍼서 운게 아니였다. 사람들에게 배척당하고 희망이 없던 전과범이 자신의 모든 것을 판틴과 코제트를 위해서 희생한 사랑의 성인(saint)으로 완벽하게 변화된 장발장의 모습, 그 순수한 아름다움에 울 수 밖에 없었다.

 

However, the most surprising thing about the movie was my reaction to it. My eyes usually stay dry when I watch sentimental movies, but when I watched the scene where Fantine comes to take away Valjean who had Cossete and Marius by his side, I couldn't stop crying. But I cried not because Valjean's death made me sad. I cried because I was touched by the pure beauty in the life of Jean Valjean who, from being an ostracized ex-convict who had no hope for the future, changed into a saint of love who sacrificed his everything for Fantine and Cossete.  

 

사람들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올바르게 살 수 있는가 질문해 왔다. 완벽한 답안은 나오지 않았고, 나올 수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장발장의 생을 보면서 느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순수한 희열은 정말 사람을 매료시키는 무언가가 있다. 장발장이 보여준 아름다운 사랑을 실천하고 나누는 것이 우리가 제안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이라고 생각한다. 

 

From the ancient times, humans have questioned themselves on how we can live good lives. There has not been a perfect answer, nor is there likely to be one. However, there is something that entrances us in that indescribable pure feeling of bliss that we feel as we watch the life of Jean Valjean. The life of fulfilling and sharing the beautiful love that Valjean has shown us is, arguably, the best answer we can give.



Posted by 이머츄어
시사지껄2013. 1. 13. 13:11



최근에 입학사정관제도(이하 입사제)에 관한 논란이 많다. 자기주도적이고 창의적인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취지로 시작된 입사제를 통해 대학을 입학한 학생들이 실제로 대학에서 더 좋은 성적을 보이고 그룹과제도 더 능숙하게 해낸다는 결과가 나왔다. 반면에 입사제가 결국에는 부모의 경제력에서 판가름이 난다는 것이다 - 입사제를 위한 단기간 캠프활동, 리더십활동 등 터무니 없이 비싼 이런 활동들은 결국 스펙을 돈으로 사는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게다가 각 대학의 입사제 임원들도 전문성이 부족해 활동과 면접에 비중을 많이 두지 못하고 특목고 학생 위주로 선발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입사제에 대한 긍정정인 평가는 TV뉴스에만 나왔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입사제는 미국대학의 입학제도를 모델로 삼은 것이다. 미국대학은 SAT라는 시험점수만 볼뿐 아니라, 자기소개서, 방과후활동, 봉사활동, 대회수상경력 등 학생의 전체적인 모습(holistic view)을 보고 학생의 잠재력을 평가해서 학생을 선발한다. 그래서 실제로 Breaking Night라는 책의 저자 Liz Murray 처럼 길바닥에서 대학을 입학하는 감동적인 스토리도 자주 볼 수 있다. 물론 그들의 제도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 미국의 입사제도 기득권층 학생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만들어 졌다는 비판도 있다. 반면에 다른 선진국, 즉 서유럽의 대학들은 수능과 유사한 대학시험을 통해서 학생들을 선발한다.  필자는 A-Level 이라는 영국식 수능을 치뤘는데,한국이랑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한국 수능보다 외우는 양이 적고, 객관식보다 주관식 문제가 많고, 거기에 논술형 문제가 추가된다. 역사나 문학같은 문과계열은 무조건 세네페이지의 에세이다.

 

다른나라들은 무슨 제도를 사용하든 한국처럼 입시때문에 나라가 뒤집어 지는 일은 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입사제에 대한 논란은 제도의 결점때문이라기 보다 한국이라는 환경의 문제인 것이다. 일단 입시제도에 구조적인 문제가 많다. 수능은 너무 암기위주로 구성되어있고, 입사제는 아직 새로 도입된 것이라 좋은 학생들을 식별할 수 있는 전문적인 눈이 부족하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는 차차 풀어가면 되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 한국 사회와 사람들의 인식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한국 사회에서는 대학 진학의 중요성이 지나치게 크다. 대학 진학이 이렇게 중요하게 된 데에는 한국 사람들의 전반적인 보수적 태도의 영향이 크다. 사람들이 보수적인 이유는 사람들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자세히 살펴보자.

한국에서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은 대부분 의대, 법대 아니면 경영대로 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 안정된 직업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한국 고등학생의 80%는 대학으로 진학한다. 이유는 간단한다 - 대졸이 아니면 기업에서 안정된 직업을 구하기 무척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은 대졸이라도 그런 직업을 구하기 힘들다). 왜 기업들은 대졸을 원할까? 고졸들보다는 대졸이 교육을 더 받았으니 일도 더 잘할거라는 예상을 하기 때문이다. 정말 뛰어난 고졸들은 없는 걸까? 안정적인 직업을 원하는 학생들은 대학 입시를 위해 공부하면서 창의력과 개성을 길러주는 활동(독서, 공연, 창작)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나마 뛰어난 인재가 있을지라도 보수적인 기업들은 모험을 하기보다는 대학졸업장이라는 품질 보증장이 찍혀있는 사람들을 데려간다. 취업준비생이나 기업이나 둘다 보수적으로 나오면 악순환은 계속된다.

 

한국사람들이 이렇게 보수적으로 행동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조금만 실수하면 인생을 날려버리게 된다. 한국은 사회안전망이 너무 부족하다 - 학생은 대입에서 실패하면 인정을 못받게 되면서 인생이 힘들어진다. 유럽이나 미국에선 최저임금이 높아서 알바를 주직업으로 삼아도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지만 시급 5000원도 안되는 한국에서는 그런 삶이 너무 힘들다. 사장도 보수적일수 밖에 없는게 한번 망해버리면 빛더미에 싸이면서 파산을 하게 되고 재기하기 무척 어렵게 된다. 따라서 운영이나 채용을 할때 도박을 하지 않는다. 채용을 할때 고졸이나 지방대생이 가진 잠재력을 보기보다는 SKY에서 좋은 학점을 받고 나온 "검증"된 사람을 뽑는거 더 안전한 것이다. 

 

다만 위안으로 삼을수 있는 것은 아직 한국사회의 보수적인 틀을 깨고 우리에게 희망과 도전을 주는 성공한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이다 . 이런 사람들이 될 잠재력을 가진 학생들을 장려하는 사회와 뒷받침 해주는 정부정책이 있어야만 한국의 입시전쟁이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세상을 창조해가는 사람들이 주류가 되는 세대가 우리이기를 희망해본다.  

 



 



 

Posted by 이머츄어
독서리뷰2013. 1. 9. 20:21

 

 

간단하고 명료한 책이였다. 인간은 비합리적일 때가 있고, 그런 비합리적인 행동을 잘 활용해야 된다는 것이다. 각 챕터마다 추측이 있고, 실험을 통해서 그 추측을 정당화한다. 그 추측들이 대단한 발견들은 아니였다고 생각하나 각 추측을 자기의 인생스토리에 연결시키고 재미있고 창의적은 방법으로 실험을 진행해서 읽는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그 중에서 제일 신선했다고 생각한 몇개만 골라서 쓰겠다.

 


1. 큰 보너스가 안먹히는 이유

2008년 미국에 경제위기가 닥쳤을때 미국의 기업들이 CEO들에게 천문학적인 보너스를 주는 것에 대해서 논란이 많았다. 기업들의 설명은 이정도 보너스가 있어야지 CEO들이 열심히 일해서 문제를 해쳐나갈 수 있도록 자극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돈을 아끼기 위해서) 인도사람들에게 실험을 해본 결과 너무 큰 인센티브는 사람을 긴장되게 해 오히려 성능 저하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보너스는 적당해 줄때 최고의 결과를 낸다.


2. 노동이 즐거울수 있는 이유

저자는 자신의 학생의 사례를 언급해준다. 중요한 회의를 위해서 PPT를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회의가 취소되서 아무 필요가 없게 됬다. 하지만 무뚝뚝한 사장으로부터 듣기 힘든 칭찬을 받았고, 열심히 일한 보상으로 보너스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학생은 행복하지 않았다. 실험에 따르면 동물들도 일하고 밥을 먹는것하고 그냥 밥먹는 것 사이에서 일하고 밥먹는 것을 선택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동물이나 인간이나 자기가 하는 일에 의미가 있을때 더욱 열심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 사회에 적용해봐서 생각해보면 자신이 만든 것의 끝을 보지 못하는 노동분업이 어떻게 보면 비효율적일 수도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장인들이 만든 물건들이 더 매력적인게 아닐까.


3. 우리가 복수를 원하는 이유

저자는 자신이 신뢰햇던 아우디 자동차가 고장이 나고 그들의 쓰레기 A/S를 경험했을때 자신도 모르게 복수를 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실험을 해보니 우리가 복수할때 뇌를 보면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호르몬을 배출하는 부분이 활성된다고 한다. 짧게 말해서 우리가 복수를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복수에 대상이 화를 나게했던 사람이 아니더라도 똑같은 만족감을 준다고 한다. 놀라운 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에 복수심이 감쪽같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사과하고 용서하면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될거같다.


4. 한명은 도와주고 싶지만 많은 사람들을 돕고 싶지 않은 이유

이 책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세계가 르완다 학살사건에 대해서 무관심했던 충격적인 사실에 대해 다룬다. 왜 여자아기 한명이 탄광에 같혀있을때는 전국적인 뉴스보도와 수많은 기부금이 들어오면서 600,000만명이 죽어갈때는 사람들이 그토록 무관심한 것일까? 저자는 이유를 세가지로 본다.

가. 사람들은 더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랑 더 강한 동정심을 느낀다.

나. 사람들은 그 사람에 대한 개인적인 이미지가 형성될때 동정심을 느낀다.

다. 한사람에게 준 도움은 실제로 큰 도움이 되지만 많은 사람에게는 도와봤자 거의 도움이 안된다.


저자가 검증한 추측보다는 재미있고 온전한 실험때문에 책이 빛난것 같다. 교수의 삶이 얼마나 즐거울 수 있는지 엿볼수 있는 책이였다.


P.S. 참 한국판 제목 번역들은 볼때마다 지맘대론것같다..



The book was clear and simple. Humans can be irrational, and we should use that irrationality to get the most out of it. In each chapter, Dan Ariely, the author of the book, gave a hypothesis, which he proved through experiments. Although I don't think that the findings that he presented weren't exactly great, Ariely made the book amusing enough by connecting the hypotheses to his life story and carrying out experiments in an interesting and creative way. I will write down a few that I impressed me most.


1. Why big bonuses don't work

During the financial crisis of 2008, there was a lot of controversy when corporations gave bonuses in millions to the CEOs. The corporations reasoned that such big bonuses were necessary to motivate the CEOs to pull their corporations from the current mess. However, by carrying out certain experiments in India (to save money apparently), Ariely found out that incentives that are too big cause people to become nervous and actually lower their performance. Bonuses work best in moderation. 

 

2. How work can be enjoyable

Ariely brings up a story of one of his former students. This student worked really hard to create a ppt for an important meeting, but it was rendered useless when the meeting was suddenly canceled. However, he was praised by his boss, who usually isn't so kind, and received a bonus for his hard work. Despite such gains, he was not happy. Experiments show that even animals tend to choose to do some work to get their food when they are given the alternative to get food without working. It seems that both animals and humans do work harder when there is meaning in their work. If we apply this to reality, we could argue that division of labor, in which laborers don't get to see the final product of their work, can be inefficient. There is indeed good reason why works made by artisans are superior.


3. Why we want revenge

Ariely confesses that he was seeking revenge on Audi when his Audi broke down and he had to experience a dismal after service of the car company. Experiments show that when we achieve revenge, the area of the brain that secretes pleasure hormones is activated. In short, we seek revenge because it gives us pleasure. Furthermore, it gives us the same pleasure if the recipient of our revenge is not the one who caused our ire. Surprisingly, a word of apology greatly reduces the urge for revenge. World peace is not far away with apologies and forgiveness.


4. Why we respond to the help of one but not to that of many

Many people, not just this book, was struck by how ignorant the world was when the world ignored what was going on in the Rwanda Genocide. Why do people give nationwide news coverage and overflowing donations to a baby stuck in a coal mine while being ignorant to the deaths of 600,000? Ariely gives three reasons.

a. People empathize better with people closer to them.

b. People empathize better when they form a complete human image of a person.

c. People think that they can be a big help to one person, but will hardly be any help to thousands.

 

I think it was the engaging and thorough experiments that made the book shine rather than the hypotheses he proved. The book allowed us to peek into the life of a professor, and how enjoyable it could be.

 


Posted by 이머츄어
랜덤고찰2013. 1. 6. 16:55

논산에서 30km 행군을 마치고 1주일동안 지긋지긋한 정신교육을 질리도록 받았다. 그 많은 정신교육중에서 특별히 높디높으신 연대장님이 하는 교육이 있었는데 거기서 뜻밖에 재회(?)가 있었다. 꿈에 대해서 얘기 하시면서 동영상을 틀어주셨는데 김수영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꿈을 어떻게 이루었고 계속해서 이루어가는지에 관한 내용이였다. 근데 이 김수영이라는 사람이 내가 1학년 1학기 때에 수업을 하면서 인터뷰한 사람이다. 안그래도 군대에서 여자보여주면 반가운데 내가 실제로 만난 사람을 보니 더욱 반가웠다.

 

After completing the 30km march in Nonsan training camp, we received a week of dull "mental education" (so they called it). Among the many sessions, there was a special one that the brigade commander held, where I was to have an unexpected reunion with a certain person. The commander talked about dreams and showed us a video about this person called Kim Soo-young; he talked about how she realized her dreams and how she continues to realize them now. It so happened that I interviewd this lady for my college course when I was doing my first semester of freshman year. Men are glad enough to be shown a woman in the army, which meant that I was exceptionally glad to see a woman that I knew.

이분도 참 대단한 분이시다. 실업계 고등학교 다니면서 가출까지 했다가 골든벨 우승하고 연세대 입학해서 골드만색스 찍고 현재 로얄더치셸에서 일하고있다. 참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여기까지 온거 보면 참 대단한 열정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것 같다. 이제 나이가 서른 좀 넘었는데 자신이 어릴때 적은 74개의 꿈을 지금 반쯤은 벌써 이루었다고 한다.

 

She is indeed a great woman. She attended a technical high school and ran away from her house for a while. However, she got her matters straight, and studied hard to eventually win the Golden Bell and enter Yonsei University; she entered Goldman Sachs, and now she works for Royal Dutch Shell. She really must have had fierce passion and will to have made it here, as she was able to overcome her troubled childhood. She is a little over 30 years now, but she has already realized half of the 74 dreams that she wrote down when she was young.


하지만 오랜만에 이분을 영상으로 보면서 뭔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그분의 꿈의 대부분이 다 자신을 위한 꿈이였기 때문이다. 그분의 열정을 자신을 위하지 않은 다른 사람, 즉 사회를 위해 쏟아부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김수영씨, 그리고 많은 "성공한" 사람들은 우리에거 "어떻게" 꿈을 이룰 수 있는 지 알려준다. 그리고 김수영씨는 실제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다른 사람에게 꿈에 대한 메시지를 전파한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꿈을 꾸어야 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우리에게 꿈을 가지라고, 그리구 이루라고만 말해준다. 그 꿈의 방향이 얼마나 바람직한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However, as I watched her speak in the video, I felt that something was missing; I realized that most of her dreams were for herself. Wouldn't it have been better if she used her brilliant passion aimed at other people, i.e. the society? Ms. Kim, and many like "successful" people tell us "how" we can realize our dreams; in fact, Ms. Kim goes around the whole country, spreading the message about dreams. But they often miss out to tell us "what" dreams we should dream of. They just tell us to dream, and realize it. It occured to me that I needed to focus my thoughts on the direction of the dream.


왜 사람들은 꿈을 가지는가? 무언가를 원하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무엇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Why do people dream? Because they want something.

Why do people want? Because they lack something.


이 불완전한 세상에 부족함은 자기 자신에게도 있고 사회에도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사람은 보통 사회의 부족함을 먼저 보기보다는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보고, 그것을 우선적으로 채우려고 한다. 하지만 개인의 부족함과 사회의 부족함은 필연적으로 연결되있기 때문에 부족함을 동시에 채워야 한다. 물론 개인이 속해있는 사회 즉 환경의 부족함을 극복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사회의 부족함 때문에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지 못하기도 한다. 

 

In this imperfect world of ours, individuals lack something, and the society also lacks something. People usually look at their own deficiency first rather than their society's and tries to fill their own deficiency first. However, because the deficiency of the individual and that of the society are inevitably linked, the deficiencies must be filled at the same time. Although there are some individuals who overcome the deficiency of the society/environment they live in, and go on to fill their deficiencies, many people fail to fill their deficiency because of the deficiency in the society.


요지는 이거다. 개인을 위한 꿈을 가지고 이루는 것도 좋지만, 개인과 사회를 위한 꿈을 가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그래서 김수영씨 같은 사람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즉 어떻게 자신의 꿈을 이루는지도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어떤 꿈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더 중요하고 바람직한 것이다. 자신의 꿈의 열정을 쏟아붇기 전에 먼저 자신의 꿈이 어디로 가는지, 꿈의 방향을 우선적으로 잡아야 된다. 그렇다면 세상이 조금이라도 살기 좋아지지 않을까.

 

The point is this: it is good to have a dream for oneself and realize it, but it is better to have a dream for oneself and the society. What Ms. Kim and people like her tell us, i.e. on how to realize our dreams, are all good stuff. However, thinking about what dreams we should have is more important and desirable. Before we proceed to pour out our passion into our dreams, we should first point our dreams in the right direction. Perhaps, we would end up with a better world t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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