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고찰2013. 12. 18. 17:36

인간은 열정적일수 있기에 아름답다. 우리는 이런 저런 방법을 통해 우리의 열정을 따라 실천하고 그 열정을 표출하기 원하는데, 그런 데에 있어 음악은 자주 사용되는 우리의 언어이다. 따리서 사람들이 부르고 듣는 음악을 통해 사람들의 열정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열정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의 연인에 대한 열정, 사회의 정의실현을 위한 열정, 나의 미래의 대한 열정 등이 있다. 확실히 미국 영국 가요를 듣다보면 이런 열정에 대한 가사들을 골고루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영국 가요에서 정부에 대한 비판과 정의실현을 위한 가사들을 더 많이 찾아 볼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Jamiroquai의 Virtual Insanity로 미래에 인공적인 기술을 통해 인간들이 피폐해지는 것을 "미쳤다"고 부르짖는다.


하지만 한국 노래를 보면 유독 연인에 대한 열정, 즉 우리가 흔히 부르는 "사랑"에 대한 노래가 대다수다. 사랑을 폄하하려는것이 아니라 우리가 섭취하는 영양분처럼 우리의 열정에도 균형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사랑 외의 열정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모습이 영 꺼립칙하다는 말이다.


나는 이 열정의 불균형과 결핍이 문제라고 본다. 개인의 책임인지, 사회의 책임인지, 아니면 역사의 책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문제인것은 틀림없다. 왜 미래에 대한 열정을 부르는 노래들을 사람들은 듣지 않는 것일까? 주변의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꿈을 펴보겠다고 새로운 길을 나서다가 실패한 모습을 수없이 봐왔기 때문에 공감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특히나 한국은 사회 안전망이 열악한 편이라 사람들이 쉽사리 모험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또한 왜 사회의 정의실현을 위한 열정은 듣지 않는 것일까? 한국 정치와 사회의 문제가 한두개가 아니라서 아예 변화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는 것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게으르고 현실에 안주해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일까. 최근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대자보 열풍에서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정치적인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 일종의 "유행"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대자보들을 찬찬히 읽어보면 불평은 많지만 사회 이슈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해결책에 대한 생각이 너무 부족하다. 정말이지 한국에서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다가 갑자기 이렇게 관심을 가지게 되니 이런 열풍이 정말 변화를 가지고 올지에 대한 의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내 인생의 문제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평상시에 관심을 가지고 이런 것에 대한 고민을 삶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 열정이 결핍된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데, 문제를 의식하지 못하고 관심을 가지지 않는 다면 그 사람은 차가운 사람, 게으른 사람이다.


Posted by 이머츄어
독서리뷰2013. 12. 11. 21:45



이 책을 읽고 나서 현실을 바라보면 우울해진다. 삼성에 비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전직 검사였던 김용철 변호사 만큼 삼성에 대한 신빙성 있는 고발을 할 사람이 없을텐데,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아직도 무슨 일 있었냐듯이 계속해서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비관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김용철 변호사가 저만큼 했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다면, 나라고 뭘 할 수 있을까. 사회의 선진화와 발전은 그리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제아무리 삼성이 정치권과 언론, 기업계를 휘둘어 잡고 있다고 해도 국민의 인식이 깨어있고 서로 단결할 수 있다면 삼성을 바꿀수 없는 건 아니다. 너무나도 커버린 삼성이 한국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다같이 삼성 제품을 안사면 그만이다. 하지만 나하나 삼성제품 안산다고 뭐가 바뀌나 하는 생각에 품질좋고 A/S좋은 삼성 제품을 구매한다. 아니, 오히려 삼성이 잘되야 나라 경제가 잘된다고 다들 생각하지 않는가? 착각이다.


한국에 수많은 취업준비생들이 만약 그들의 고생의 원인이 다름아닌 그들의 목표라는 사실을 깨닳으면 어떤 행동의 변화를 보일지 궁굼하다. 다들 환경이 열악한 중소기업을 피해 대기업에 입사하려고 청춘을 불태우는데, 그 중소기업들의 환경이 열악한 이유가 대기업들이 자신의 규모와 자본을 가지고 중소기업들의 성장을 억눌러서 그런것 아닌가. 제일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대기업에 입사해 대기업의 배를 불려주니 이처럼 안타까운 악순환이 없다.



Posted by 이머츄어
내가사장2013. 12. 11. 20:54

은근히 밤에 잠드는 것을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중 한명인데 이상하게 차만 타면 잠이 잘 온다. 그 이유가 차의 진동때문은 아닐까? 차를 오랜 시간 타면 차의 진동때문에 몸이 피로해진다. 이 피로가 졸음을 유발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만약 그렇다면 침대에 진동기능을 넣어서 졸음을 유발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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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머츄어
독서리뷰2013. 11. 3. 13:55

 

 

 

미국의 음식문제는 예로부터 책과 다큐를 통해 많이 비판된 부분이다. 가축이 몸에 좋지 않은 사료를 먹고 있다든지, 거의 모든 음식이 옥수수에 기반됐다든지, 그리고 그것들이 인간에게 심각한 건강 문제를 준다든지 말이다.  잡식동물의 딜레마의 첫장을 읽으면서 "아 이 책도 그런 책중에 하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넘겼는데, 물론 전에 시사화 된 부분들이랑 많이 겹치는 부분도 있었지만,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현 상태의 미국 식품 시스템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것 같았다. 


마이클 폴란이 그의 책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점은 사회에서 간혹 맹목적으로 성취하려는 "세계화" 움직임이 부실한 식품을 통해 인간과 지구의 건강을 망치고 있다는 것이였다. 생산자와 구매자가 거리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완전히 동떨어져있는 세계화된 경제 체제에서는 구매자가 구매하는 식품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무지하며 따라서 생산자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산비용을 최대한 줄이고 생산량을 늘리되 최소의 질만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 생산자의 이러한 행동은 결국 옥수수에 기반되고 획일화된 식품시스템을 만드는데, 이렇게 되면 가축들의 건강에도 나쁠 뿐 아니라 옥수수를 대량으로 생산하는데 사용되는 화학비료 때문에 환경도 오염이 된다. 또한 세계화된 경제 체제는 식품을 운반하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생산자와 구매자가 거리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식품을 운반하는데 필요한 비용과 발생되는 환경오염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이처럼 식품 시스템에만 적용되지 않고 더 큰 의미를 가지는 폴란의 세계화에 대한 비판은 한국에 있는 우리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준다. 아무래도 한국에 있는 우리에게 미국 식품 시스템에 대한 문제는 동떨어진 얘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벌써 세계화된 식품 유통 시스템을 통해 우리가 미국에서 나온 식품을 접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식품 말고 전반적으로 세계화된 시장에 대한 고찰을 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실 한국은 음식에 있어 여러가지 방면에서 미국보다 훨씬 더 좋은 여건 아래에 있다. 농산물은 보통 기업이 아닌 개인에 의해 생산되며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재래시장들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세계화된 농산물 유통은 한국 농산물이 더 좋은 환경에서 생산됐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농산물이 더 싸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후자를 구매하게 한다. 지금은 한국 농부들이 간간히 버티고 있지만, 훗날에는 한국 농산물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 다다를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더 큰 틀에서 세계화된 경제체제에 대한 비판을 해볼 수 있겠다. 음식만큼 우리에게 중요하고 자주 구매하는 물품이 있다면 옷일 것이다. 우리 옷장과 신발장에도 세계화된 경제 체제의 산물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들 나이키 신발이나 유니클로 티셔츠는 있지 않은가? 여기서도 똑같이 문제는 구매자인 우리가 제품의 생산 환경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나이키는 미성년 노동 부분에 많이 기사화 되서 많은 변화를 만들어 다행이긴 하지만 아직 우리는 대형 의류 기업의 큰 간판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잘 모르는 무지의 상태에서 살고 있다. 책에서 나온 조엘 살라틴의 농장처럼 생산과정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옷가게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면 우리가 조금 더 책임성있는 구매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변화를 만들수 있는 사람은 구매자인 우리다. 우리가 우리 건강과 사회, 지구를 위한 책임감을 가지고 생각을 하며 구매를 한다면 좀더 우리 사회가 아름다워 질수 있지 않을까. 그런 사회의 지름길은 서로 믿을 수 있고 도울수 있는 이웃끼리 거래하며 지속 가능한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Posted by 이머츄어
독서리뷰2013. 9. 8. 22:13




따뜻한 책 이야기라는 연합동아리를 가입해 처음으로 읽은 책이다. 오랜만에 읽는 문학이라 조금 부담되기도 했지만, 꼼꼼하게 읽어보니 어느세 술술 읽히기 시작해 재밌게 읽게 됐다. 줄거리를 엄청 요약하자면 2명의 딸을 둔 고리오 영감이 자신의 딸들을 끔찍하게 사랑하지만 딸들은 그만큼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아 병이 도져서 죽는 이야기다. 사실 책의 줄거리는 고리오 영감이 아니라 고리오 영감의 딸의 애인이며 같은 하숙집의 거주하는 라스티냑을 중심으로 돌아가는데, 나는 책에서 라스티냑보다 고리오 영감의 일방적인 사랑이 시사하는 바가 컷다고 생각했다.


일찍이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고리오 영감은 그 넘치는 사랑을 딸들에게 돌렸다고 서술자는 설명한다. 혁명 도중 밀가루 장사를 해 때돈을 그는 누나인 아나스타지를 귀족에게 동생인 델핀느를 사업가에게 시집보내고 자신은 허름한 하숙집에 살아가며 사치스러운 딸들을 위해 자신의 결혼 예물까지 팔아가면서 돈을 보내준다. 그러나 아나스타지는 자신을 도와주려고 어음을 준 라스티냑에게 비방을 퍼부은 다음 어음에 서명을 받으려 회계를 가장한 파렴치한 인물이고 델핀느는 아버지가 죽어가는 것보다 파리에서 제일 잘나가는 드 보세앙 부인의 무도회에 나가는 것을 더 중요시한 여자다.


고리오 영감의 이런 부성에를 희생적인 사랑이라고 보기 쉽지만, 이런 사랑은 결코 고귀한 사랑이 아니다. 한쪽만 애정을 표하는 집착과 양쪽이 서로에게 감정을 표현하는 사랑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고리오 영감에게는 어찌보면 어쩔 수 없는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딸들은 어릴 적 부터 아버지에게서 받은 사랑의 표현을 주로 물질적인 것으로만 하다 보니 그런 사랑의 표현을 계속하는 아버지를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닐까? "자식이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라는 고리오 영감의 생각은 옳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식들이 필연적으로 아버지를 사랑해야되는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아버지와 자식 사이에 성숙한 양방향 사랑이 성립하려면 아버지도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좀 더 넓게 생각을 해보면 부위자강, 장유유서 같은 유교적 사상에 결함이 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물론 부위자강과 장유유서가 이루어 지는 사회가 이상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어른들이 존경받을 만한 행동을 하고 배울만한 지혜를 소유한다는 전제하에 이상적인 사회지, 이런 사상을 권리로 생각하고 할말 없으면 꺼내 휘두르는 어른들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어른을 무시하게 되는 것이다. 서로간의 사랑과 존중은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과 자신을 가꾸고 소중히 여기는, 자신을 향한 사랑부터 시작된다.

Posted by 이머츄어
독서리뷰2013. 8. 10. 15:06




한 5개월 전에 Sam Kean의 The Violinist's Thumb를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바람에 저자의 The Disappearing Spoon도 꼭 읽을 거라고 다짐했었다. 전자가 생물에 중심을 둔 과학의 역사였다면은 이번에 읽은 후자는 화학에 중심을 둔, 즉 주기원표가 누구에 의해 그리고 어떻게 만들어지고 완성이 됐는지를 저자 특유의 재치있고 술술 읽히는 문체로 쓴 책이다. 두 책의 표지를 비교해보면 꼭 어느 시리즈의 일부같은데, 혹시나 다음 책은 생물, 화학 다음 물리에 대한 책일지 기대가 된다.


본 책은 픽션같은 논픽션이라서 전체적인 주장같은건 없고, 그냥 여기저기에서 재밌는 생각을 하게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나 기억에 남았던 내용들을 적어보겠다.


pg. 96 - 전 세계에서 탄탈룸과 니오븀이라는 원소의 60%는 아프리카 콩고에 매장되있다. 탄탈룸과 니오븀은 밀도와 열 저항도가 높고, 녹슬지 않고 전도성이 좋기 때문에 핸드폰 부품중 필수적인데 1990년 후반부터 핸드폰 생산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가격이 폭등했다. 당시 콩고는 제대로 된 정부도 없었고 르완다 학살 후 넘어온 후투족도 있어 치안이 매우 불안했는데, 탄탈룸과 니오븀을 서로 차지하려고 서로 학살을 하기 시작했다. 이를 알아챈 핸드폰 회사들은 탄탈룸과 니오븀을 호주에서 수입하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 두 원소 때문에 5백만여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pg. 154 - 일본이 산업화를 시작하면서 이타이이타이라는 뼈가 물렁해지는 병이 생겼는데 이는 군용품을 생산하기 위해 아연을 채출하면서 생긴 부산물인 카드뮴이 땅에 스며들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카드뮴과 칼슘은 비슷한 화학적 성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카드뮴이 몸안에 들어가면 뼈에 있는 칼슘을 대체한다. 하지만 칼슘의 생물학적 성분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뼈가 물렁해진 것이다. 한 환자는 의사가 맥박을 재려고 손목을 잡기만 했는데 뼈가 부러졌다고 한다.


pg. 168 - 물 파이프나, 문 손잡이, 동전 등이 구리로 만들어 진 이유는 박테리아와 곰팡이가 구리를 흡수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구리를 흡수하면 신진대사(metabolism: 유기체 않에 일어나는 화학적 과정)에 이상이 생기면서 몇시간 지나지 않아 죽어버린다. 자동으로 살균이 되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사람 세포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pg. 170 - 원자의 핵을 둘러싸고 있는 전자는 보통 쌍으로 움직이는데 가돌리늄의 (제일 바깥에 있는) 전자들은 다 쌍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는 가돌리늄의 자성을 증폭시키는데, 이 특성 때문에 MRI에서 필수적이다. 또한, 짝이 없는 전자들은 더 많은 중성자를 흡수할 수 있는데 이는 가돌리늄을 방사성이 있게 만든다. 게다가 가돌리늄은 DNA를 복구하는 단백질을 억제하기 때문에, 만약 암 세포에만 결합하는 화학물질에 가돌리늄을 결합시킨다면 암 치료에 매우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pg. 181 - 파스퇴르는 분자 비대칭성(chirality)라는 특성을 발견했다. 쉽게 설명하지면 어느 분자의 배열에 있어 왼쪽으로 꺽이는 "왼손잡이"가 있고 오른쪽으로 꺽이는 "오른손잡이"가 있는데 왼손잡이 분자들만 신체에서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약으로 사용하기 위해 생화학 물질을 생산하면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가 고루 섞여있는데,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는 신체안에서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진다. 윌리엄 노울즈라는 화학자가 왼손잡이 분자만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냈을때 비로소 신약 개발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pg. 252 - 누구나 아는 사람들 중 이상하다시피 잠이 없는 사람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보통 사람은 아침에 햇빛을 받으면 특정 단백질이 DNA에 달라붙으면서 활력이 생기고 저녁이 되면 리튬이라는 원소가 이 단백질을 DNA에서 분리시킨다. 몸에 리튬이 부족한 사람들은 밤에도 이 단백질이 계속 붙어있기 때문에 피곤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리튬이 부족하면 조울증이 있을 확률이 높은데, 천제 시인인 로버트 로웰도 광적인 생활을 살다가 리튬을 섭취하면서 정상적으로 살 수 있었다고 한다.


pg. 288 - 하아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의 본질적인 의미는 원자의 위치의 불확정성과 속도의 불확정성이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즉, 원자의 속도가 제로일 경우에 원자의 위치는 없어진다는 것인데 이것을 보즈-아인슈타인 서림(Bose-Einstein condensate) 이라고 부른다. 콜로라도 대학의 에릭 코넬과 칼 위맨은 루비듐 원자에 모든 방향에서 원자를 쏴서 0.00001도 화씨로 온도를 낮춘 다음 자석을 사용해 뜨거운 원자들을 제거해서 0.000000001도 화씨까지 온도를 낯췄다. 이렇게 절대 영도를 접근한 2천개의 루비듐 원자들은 서로 겹치고 사라지면서 하나의 커다란 원자로 변했다. 고체가 고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다른 고체를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Posted by 이머츄어
독서리뷰2013. 8. 3. 22:24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은 영국 옥스포드의 리차드 도킨스 교수가 무려 37년 전에 쓰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읽혀온 베스트셀러다. 최근, 즉 2006년에 출판한지 30년 기념으로 추가 챕터와 설명을 집어넣은 기념판이 출판되면서 한국에서도 재조명 된 바 있다. 특히 기독교인이 많은 한국에서는 도킨스 교수의 다른 책인 "만들어진 신" 때문에 큰 이슈가 됬지만, 종교적인 내용은 배제하고 과학적 내용에 대해서만 얘기하도록 하겠다.


진화는 생물이 살아남으려는 노력의 흔적이다. 변이를 겪을 때 변이가 환경에 적합한 변이라면 생존할 가능성이 더 높아지기 때문에 진화한 생물들이 살아남는다. 중요한 점은 과연 무엇을 살리기 위해, 무엇이 "selfish" 하기 때문에 진화를 하냐는 것이다. 전형적인 생각은 "individual" 내지 "species"을 살리기 위해 진화를 한다는 생각이였는데 도킨스는 individual도 species도 아닌 gene, 즉 유전자가 이기적인 존재라고 주장한다.


먼 아프리카 땅에서 누가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고 하면 우리는 신경쓸까말까하며 넘어가지만 같은 피를 나누는 친척, 특히 가족 중 한명이 위협받는다고 하면 많은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면서 구하려고 할 것이다. 우리 유전자는 같은 유전자를 살리는 행동을 취하게끔 프로그램이 되있기 때문이라고 도킨스 교수는 말한다. 같은 유전자를 보호하려는 유전자는 서로를 살리기 때문에 살아남아 번식하고, 그렇지 않은 유전자는 죽어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기적인 유전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타적으로 행동하는게 생존률을 높인다는 것이다. 서로의 몸을 청소해 준다거나, 서로 음식을 나눈다거나 의지하면서 사는 것이 혼자 사는 것보다 생존률이 높다는 말이다. 컴퓨터로 여러 모델을 돌려본 결과 상대방의 친절을 화답하는 행동을 지향하는 유전자가 생존률이 제일 높게 나왔다. 한 무리에 이기적으로 자신의 이득만 챙기고 상대방을 돕지 않는 생물들은 장기적으로 봤을때 서로 돕는 생물보다 생존률에 있어 불리하다. 즉, 서로를 돕는 행동이 "fittest" 한 것이다.


여기서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사실 이타적인 생물과 이기적인 생물이 같은 수로 섞여 있다면 이기적인 생물이 이득을 챙기기 때문에 이타적인 생물은 죽어난다. 이기적인 생물이 소수일때만 이타적인 행동인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한 종이 번식하기에는 시작할 때에 이타적/이기적 비율이 중요한데 생물은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해서 번식하기 때문에 이타적인 생물은 그들대로 뭉치고 이기적인 생물은 그들대로 뭉치기 마련이다. 이렇게 되면 이타적인 생물들의 생존률이 더 높기 때문에 다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행동에 인용해서 돌려 생각해보자. 왜 시골 사람들이 순하고 정이 많은 반면에 도시사람들은 서로에 코를 베어가려고 하는지 이해가 된다. 위 생각에 따르면 유동성이 적을수록 이타적인 사람들의 생존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유동성이 높다면 이기적인 사람이 자신의 생존에 불리한 이기적인 무리를 떠나 이타적인 무리에서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철학자들이 논하는 성선설이니 성악설이니 하는 것은 다 필요 없고 인간의 유동성이 인간의 "본성"을 결정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선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 있는데 누가 살아남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더 나아가 과연 무엇이 "옳다"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수도 있겠다. 과학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옳고 그르고를 정하는 잣대로 진화론을 사용해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옳은 것은 "생존하는 것"이 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옳은 이유는 과학자들이 그 이론이 타당하다고 생각해서 타당하지 않은 다른 이론처럼 버려지지 않고 생존하기 때문이고, 우리가 흔히 말하듯이 도덕적으로 옳게 행동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타심이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다소 공리주의에 가까운 생각이다.


도킨스는 책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생각을 애써 부정한다. 물론 우리가 이기심에서 비롯된 이타심을 가지고 행동하도록 유전자에 쓰여져 있지만, 유일하게 인간만이 유전자의 힘을 넘어 교육을 통해 순수하게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화의 산물도 "옳다"고 할 수 있지만, 인간이 아직 정당화하지 못한, 진화와는 별개인 진짜 옳음, 즉 진실이 있을 까도 생각해 본다.


Posted by 이머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