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2016. 9. 28. 16:21



"껍데기 진보와 탐욕스러운 보수로부터 나라를 구하자"


저자가 정한 이 책의 부제목이다. 과학자가 논문조작한 사건에 왠 정치이야기를 들먹이는지 의아해할수 있지만, 책을 읽다보면 황우석 사건이 단순히 한 과학자의 부정직한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반지성주의와 정치과잉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준 "블랙 코메디"였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황우석의 논문조작에 대한 여부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얼마나 뻔뻔하게 계획적으로 논문조작을 했는지, 밝혀질께 뻔한데 왜 이런 조작을 강행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Science에 이름 한번 올려보고 싶다는 과학자의 왜곡된 꿈이었을까? 황우석은 정직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실험에 필요한 난자를 강압적으로 채취하거나 돈을 주고 구입해 비윤리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Science가 논문을 철회하고, 학계가 황우석에 대한 지지를 모두 거두면서 사건은 정리되는듯 했다.


하지만 황우석 사건은 이로 끝나지 않았다. 황우석 극렬지지자들은 대부분 피해의식에 쩔어있는 사회적 약자들이었는데, 황우석이 논문조작을 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국익" "원천기술" "애국"을 외치며 폭력적인 지지를 이어갔다. 저자는 이런 반이성적인 행동의 원인은 지지자들이 자아 정체성을 자신의 생각보다 "행위"에 기반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사회에 가진 불만이 황우석 사건이라는 엉뚱한 곳으로 분출된 것이다. 한국 사회가 더 성숙해지려면 자신의 정치적 및 종교적 신념이 이처럼 생각이 아니라 행위에 기반돼있지는 않는지 점검해 봐야할 것이다. 생각없는 신념은 이성적인 대화를 불가능하게 하고 서로를 피곤하게만 만들기 때문이다.


황우석 사건을 통해 왜 노무현 정부가 그렇게 욕을 먹었는지도 알아볼수 있었다. 황우석의 연구결과가 설상 가짜가 아니었다고 해도, 그 결과가 인간에게 상업적으로 적용되기에는 매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정부는 이 기술이 곧 "황금을 낳는 거위"가 될거라는 촌스러운 발상에 황우석에게 전폭적인 금전적 지원과 혹여나 기술이 노출될까봐 실험실에 경비를 설치했다. 생명과학이 어떻게 진행되고 발전되는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이런 웃기지 못할 개입을 한 것이다.


내가 워낙 어렸을때 일어난 일이라 잘 이해하지 못했던 사건을 책을 통해서 정리할 수 있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었고 한국 과학계가 잠깐 퇴보하는 사건이었지만, 그나마 이 사건이 한국 사회와 과학계의 윤리가 성숙해질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



Posted by 이머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