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2013. 12. 29. 23:54



21세기 현대인들의 머리에 있는 예수는 어떤 사람일까? 많은 사람들이 인류의 죄를 위해 죽고 다시 부활한,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한 신적 존재라고 답하지 않을까 싶다. 2천년이라는 까마득한 시간 전에 살았던 목수의 인생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거의 다 신약 성경, 특히 네 복음서의 내용으로 인해 각인된 것이다. Zealot의 저자 레자 아슬란은 예수의 인생에 대한 성경 내용의 역사성에 의문을 던지고 성경 밖에서 모은 단서들을 통해 조금 더 정확한 예수의 정체를 알아보려 한다.


일단 예수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네 복음서, 즉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복음서들은 누가복음을 제외하고 마태, 마가, 요한 본인이 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거의 모든 성경학자들이 동의하는 바이다. 즉, 예수의 인생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작성한 책이라는 말이다. 아슬란은 상식과 상반되는 복음서의 내용을 근거로 복음서의 저자들이 자신들의 시대적, 상황적 필요에 따라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창작"을 했다고 주장한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누가복음은 로마제국의 인구조사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가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가서 예수를 낳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구조사의 목적은 결국 세금 징수 때문이였고 현 주소에서 조세를 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 조세를 하게 해 쓸모없는 대규모 인구이동을 일으킬 필요가 없었을 뿐더러 그렇게 했다는 문헌도 전혀 없다. 아슬란은 나사렛 사람인 예수을 다윗의 자손으로 만들기 위해 굳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게끔 누가복음이 조작됐다고 주장한다.

-마태복음은 헤롯 왕이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 이스라엘의 모든 아기를 학살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대규모 학살에 대한 역사적 근거는 마태복음 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아슬란은 마태복음의 저자가 예수를 모세와 비교하기 위해 이런 내용을 첨가했다고 주장한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끈 모세처럼 예수가 이스라엘을 이끌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네 복음서에서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인의 왕" 예수가 처형에 처해지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물에 손까지 씻어가며 자신을 연루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예수가 살던 당시의 이스라엘은 사회적인 불안의 시기로서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자칭하며 반란을 일으키려고 한 지도자들이 수두룩했으며 본디오 빌라도는 이런 반란자들을 가차없이 십자가에 못박았던 것 무자비한 총독으로 유명했다. 따라서 아슬란은 복음서의 저자들이 로마인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로마인인 빌라도를 유화한것이 아닌지 의심한다.

-누가복음 24장에서 예수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그리스도(메시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이라고 말한다. 다만 구약성경에 메시아가 고난받고 죽고 부활할 것이라는 구절은 단 한절도 없다. 왜냐하면 애초의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메시아는 다른 우주가 아닌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뒤엎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사람, 그리고 신이 아닌 인간이였기 때문이다. 예수가 죽음으로서 그가 메시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게 되니 예수의 추종자들은 메시아의 정의를 바꿔 예수의 죽음의 의미를 부여한 것이라고 아슬란은 주장한다.


따라서 아슬란은 예수의 정체를 당시 이스라엘의 맥락을 감안해 추측하려 한다. 그가 내린 결론은 예수가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하고 천국을 약속한 신적 존재가 아니라 로마 제국에 맞서 반항하려 했던 민족주의적 지도자라는 것이다.


-예수가 10살이였을 당시는 갈릴리 유다라는 유대인의 반란이 진압되고 세포리스라는 도시가 폐허가 된 시기이다. 헤롯의 아들 안티파스는 세포리스를 호화찬란하게 재건축했고 세포리스에서 가까운 나사렛에 살고있던 목수의 아들 예수는 세포리스에서 자주 일을 했을 것이다. 따라서 예수는 갈릴리 유다의 반란과 세포리스의 빈부격차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가복음 12장에서 세금을 가이사에게 바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바리세인들의 질문에 예수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라는 유명한 반박을 한다. 하지만 여기서 "바치라"의 헬라어 원어는 "apodidomi", 즉 돌려주라 라는 뜻이다 (특히 소유물을 돌려준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물질적인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고 마음과 영혼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뜻이 아니라, 로마제국이 뺐은 이스라엘 땅을 하나님의 백성, 즉 이스라엘에게 돌려주라는 뜻이다.

-누가복음 12장에서 예수는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다"라고 말한다. 또한 마태복음 11장에서는 "Kingdom of God has been coming violently, and the violent ones try to snatch it away"라고 말한다. 사랑의 메세지를 전하는 예수라기보다는 혁명가 예수에 더 가깝다.

-마태복음 15장에서 예수는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라고 말하고 10장에서는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면서 자신이 유대인을 위한 메시아라는 것을 확실히 밝힌다. 지금의 기독교가 만민의 종교가 된 것은 바울의 기여가 크다. 예수가 죽은후 예수의 형제 야고보와 베드로는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을 위한 교파를 이끌어 갔다. 이들과 마찰이 생긴 바울은 이방인들을 위한 교파를 이끌었는데 서기 70년에 로마가 예루살렘을 파괴하면서 예루살렘의 교파는 자취를 감추게 됐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 예수는 산헤드린(유대인 의회)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한 후 대제사장들의 분노를 사 빌라도에게 보내진다. 하지만 복음서에서 쓰여진 것과 달리 산헤드린은 밤에 열릴 수 없으며 유월절에도 열릴 수 없다. 또한 맘대로 대제사장 집 앞에서 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예수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한 것이 신성 모독이라면 레위기 24장에 쓰여진 대로 따라 돌에 맞아 죽는 것이 맞다 (스데반이 그렇게 죽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것은 그의 죽음이 신성 모독 때문이 아니라 주민 선동때문이였다는 것을 뜻한다. 당시 선동에 대한 로마제국의 처벌은 십자가의 못박는 것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슬란의 주장도 다 끄덕거리면서 받아들일수는 없다. 자세히 읽어보면 아슬란이 억지를 부릴 때도 있고 주장이 모순되는 부분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복음서의 역사적 부정확함을 지적하고 나서 복음서에 근거한 독립운동가 예수의 모습을 그리는 것도 신뢰가 가지 않는다.

-12살 예수가 제사장들과 성경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을 보고 아슬란은 예수가 나사렛이란 시골에 살았고 목수의 아들로서 글을 읽을 줄도 몰랐을 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글을 못읽을거라고 단정하기는 무리 아닌가? 또한 아슬란의 말대로 세포리스라는 대도시를 자주 방문했다면 글을 배웠을수도 있는 것 아닌가?

-요한복음 18장 36절에서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라고 말한다. 아슬란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만 보고 "이 세상"이란 단어의 본 의미는 "order/system," 즉 예수가 현재하는 정치 체제와는 다른 체제를 설립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구절 전체를 봤을때 문맥적으로 말이 안된다.


확실한 것은 예수가 그의 추종자들(복음서의 저자들)에 의해 실제와는 다르게 포장됬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이렇게 허술하다면 과연 하나님 그 자체를 믿을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우리가 하나님을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은 성경밖에 없는데, 성경이 객관적이지 않으니 어떻게 하란 말인가. 하나님을 객관적으로 만나려는게 잘못된 생각이라고? 이런 주장으로 종교적 논리의 허점을 받아들이게 되면 모든 종교든 "주관적"으로 믿을 수 있게 된다. 아슬란이 제시하는 혁명가 예수의 주장도 결국 객관정 증거의 부족함 때문에 역사적으로 옳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는 없다. 다만, 성경이나 아슬란의 책이나 흥미롭게 읽어볼 수 있는 "해석"이라고 할 수 있겠다.





Posted by 이머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