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2013. 1. 24. 13:09




내가 이 블로그를 처음으로 쓰기 시작하게 된 이유는 내 종교적 정체성을 더 확실하기 위한 것이였다. 그래서 맨 처음 포스트는 성경을 탐구하겠다는 취지로 프린스턴대 교수 일레인 페이절스가 쓴 Gnostic Gospels라는 책에 대해서 썼다. 이 책에 따르면 성경학자들은 1945년 Nag Hammadi에 발견된 책들을 통해 초기 교회 시절에 4복음서 외의 복음서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페이절스의 또 다른 책 Revelations는 요한계시록 외 다른 계시록들이 존재했고, 왜 요한계시록만 신약성경에 포함됐는지 설명한다.


악한 제국 로마를 타도하는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요한이 이 책을 쓰던 시대의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때는 막 로마가 이스라엘의 반항을 제압하고 예루살렘을 처참히 파과시킨 후였다. 유대인들에게는 예루살렘의 성전이 무너졌다는 것은 큰 충격과 심적으로 고통스러운 사건이였을 것이다. 철저한 유대인이였던 요한에게 이런 상황이 마가복음 13장에 나오는 재난과 환난,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의 내용과 잘 맞아떨어졌을 것이다.

또한 요한계시록의 내용이 그 시대의 이벤트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고 말할수 있겠다. 그 당시 로마 제국 곳곳에는 거대한 황제의 석상들이 지어졌는데 이런 사실은 적그리스도의 석상이 곳곳에 세워지는 요한계시록의 내용과 흡시하다. “불붙는 큰 산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는 것은 그 시대 최대 자연 재해였던 베수비우스 화산에 대한 요한의 반응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 12장에 나오는 용이 태어난 아기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장면에서 용은 로마, 임신한 여인은 이스라엘, 태어난 아기는 예수님을 묘사한 것이다. 그리고 많은 학자들은 게마트리아 방식을 사용해서 짐승의 숫자 666이 네로 황제라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보면 요한계시록은 로마를 상대로 한 선전물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한 로마 황제를 적그리스도로 설명하고 재난과 환난의 시대에 구원받으려면 적그리스도인 로마 황제에게 굴복하지 말고 저항하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주장할 수 있겠다. 이런 선전물을 로마 제국의 검열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징주의와 모호한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요한은 누구인가

요한계시록의 저자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보통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이자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이라고 생각할것이다. 성경학자들도 수백년동안 그렇게 생각해 왔지만 최근의 연구결과를 보면 그렇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문맥적 비판을 통해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을 비교해보면 글의 스타일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게다가 요한계시록의 요한이 사도 바울의 신학을 강경하게 반대했다는 페이절스의 설명을 읽어보면 심지어 왜 요한계시록이 신약성경에 포함되었는지 의문이 들 것이다.

먼저 이해해야 될것은 신약에 보이는 것보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베드로와 바울이 부정한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해 다툰 것은 빙하의 일각일 뿐이다. 그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유대인들에게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유대인과 같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바울의 가르침은 충격이였고, 그 가르침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요한계시록의 요한이 이런 유대인 중 한명이였다고 생각 하면 요한계시록을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은 자세히 읽어보면 유대인을 위한 계시라는 느낌을 받는다. 처음부터 요한은 이스라엘의 12부족중 선택된 사람들만 구원될것이라고 말하고,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하지만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을 향해 "사탄의 성전"이라고 부른다. 영적으로 유대인, 즉 선택받은 민족이 됐다고 생각하는 이방인들을 거부하는 것이다.  

물론 요한이 바울의 가르침에 동의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요한이 비판하는 "사탄의 성전"이 이방인이 아니라 유대인답게 행동하지 않는 유대인들을 비판한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요한계시록에는 바울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기 때문에 요한이 비판하는 "거짓 선지자"가 바울인지 아닌지는 단정할 수 없다. 단지 두가지 완전히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요한계시록이 신약성경에 포함되기까지

요한의 계시와 달리 세상의 종말은 오지 않았고 오히려 적그리스도라고 묘사된 로마 황제(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로마의 정식 종교로 삼으면서 핍박의 종말이 왔다. 이 요한계시록을 재해석해서 정경에 포함시킨 사람이 아타나시우스다. 아타나시우스는 알렉산드리아의 교주로써 니케아공의회에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주장했고 정경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이 시대는 니케아 공의회가 열렸던 시대였던만큼 기독교인 서로를 이단으로 몰아내면서 자신의 신학이 옳다고 싸우던 시대였다. 이 와중 아타나시우스는 이단을 없에고 교회 위계 질서와 정경을 만들어 교회를 통일하려고 노력했다. 아타나우시우스는 심지어 "안드레의 인생"이란 책을 통해 사실을 바꿔가면서  통일성을 형성하려고 했다. 그 당시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존경받았던 안드레는 아타나우스가 주장하는 위계와 정경과는 달리 더 자유로운 질서를 추구했는데 아타나시우스는 안드레가 아타나시우스의 주장을 옹호하도록 비치게 책을 쓴것이다. 성 어거스틴도 이 책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고 초기 교회의 위계질서를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아타나시우스가 요한계시록을 정경에 포함한 이유는 아마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요한은 요한계시록 22:18에서 누구든 자신의 책에서 내용을 더하거나 빼는 사람을 하나님이 심판하실 거라고 말한다. 더 이상 뺄수도 없고 더할 수도 없는 정경을 필사적으로 원했던 아타나시우스에게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았을리 없다. 게다가 아타나시우스가 재해석한 요한계시록은 이단을 깡그리 없에겠다는 그의 전념과 일치했다.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로마황제가 적그리스도일리는 없으니 기독교 안에 있는 이단들을 적그리스도와 사탄으로 해석한 것이다. 당시에 요한계시록 외의 여러 계시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타나시우스가 요한계시록을 선택한 이유는 이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마치며


페이절스의 글을 읽어보면 자신의 주장과 근거를 제시하기만 하고 결정은 독자에게 맡긴다. The Gnostic Gospels와 Revelations를 둘다 읽어본 후 느끼는 것은 4복음서가 신약성경에 포함되고 도마 복음서, 유다 복음서 같은 그노시스파 책들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이해 할 수 있다. 전통 기독교의 교리가 그노시스파의 교리보다 더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전통 기독교 교리와 아예 기반이 다른 그노시스파 복음서가 신약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요한계시록은 반대로 포함되지 말아야 할 책이 포함된것 같다. 다른 계시록보다 더 정당성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아타나시우스의 지지 때문에 포함됬다는 느낌이 강하다. 사실 신약에 포함될 책을 정할때 제일 논란의 소지가 많았던 책이 요한계시록이다. 만약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지지 않은 책이 성경에 포함되있다면, 성경의 다른 책들도 과연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것인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Posted by 이머츄어